스테이블코인(stablecoins·법화나 자산과의 교환 비율을 고정한 암호화폐)을 제도권 금융으로 포괄하는 미국의 ‘지니어스법(GE-NIUS Act·미 스테이블코인 혁신법)’이 7월 19일(이하 현지시각) 공포되면서, 한국에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뒷받침하기 위한 입법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는 글로벌 결제 수단으로 부상한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사용 증가가 원화의 통화 주권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면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수요를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깔려 있다.
암호화폐 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러한 기대에 대해 “어디에 쓸 수 있을지 경제적 효과가 불확실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 통화 주권을 지키겠다는 발상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국내에서 외국인의 달러 스테이블코인 결제가 늘어나면 원화의 역할이 줄어들고, 이는 통화 주권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 자체는 성립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스테이블코인은 실제로 어디에 쓰일까. 김 교수는 “블록체인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가장 큰 효용은 거래 단계를 줄여 국제 송금 수수료를 줄이는 데 있다”며 “리플(Ripple) 같은 암호화폐가 주목받은 것도, 스위프트(SWIFT)망 등 다단계 중개 구조를 제거하고 일대일 거래를 가능하게 했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월마트, 아마존 등 미국의 대형 유통 업체가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추진하는 이유도 거래 수수료 절감이라는 분명한 경제적 유인이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스테이블코인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우선 그것이 연동되는 통화가 글로벌 수요가 많은 기축통화여야 하며, 해당 코인을 활용할 수 있는 기업이나 생태계가 함께 존재해야 한다” 며 “아마존, 월마트처럼 세계 각국에서 상품을 납품받고 판매하는 기업에는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절감할 수 있는 수수료 규모가 천문학적이라는 분석도 있다”고 전했다.
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경제적 효용이 크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의 공통된 분석이다. 김 교수는 “국내 플랫폼 기업 대부분이 사업 기반이 한국에 국한되기 때문에, 결제 수수료 절감이나 국제 송금 같은 실질적인 경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미 인터넷뱅킹이나 간편결제 인프라가 잘 갖춰진 국내 환경에서는 블록체인을 굳이 도입해야 할 필요성도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국내에서 스테이블코인이 사용되는 이유는 그것이 ‘스테이블코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달러 기반이기 때문’”이라며 “달러는 글로벌 통화지만, 원화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태생적으로 한계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재명 대통령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공약에 따라 국회에서 관련 입법 논의가 활발하다. 이를 어떻게 평가하나.
“지금까지 논의 흐름을 보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왜 발행하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통화 주권이 위협받는다는 명분은 있지만, 실사용처나 유인이 없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 통화 주권을 지킬 수 없다는 의미인가.
“아마존 같은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 플랫폼에 달러 스테이블코인 대신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쓰라고 요구할 수 있다면 그게 가능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K-팝 상품 거래에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그게 현실이 되려면 기획사와 플랫폼이 K-팝 음원을 원화로만 결제하는 등 강력한 생태계 조성이 선행돼야 한다. 또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달러와 상호 교환할 수 있어야 국제 거래에 쓸 수 있는데, 그것도 어렵다. 그래서 차라리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를 만들어 실험적으로 국제 송금에 활용하자는 주장이 더 현실적이다. 용도와 전략 없이 ‘일단 만들어보자’는 접근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어떤 부작용이 예상되나.
“용도에 대한 고민 없이 코인을 만들고, 사업자 중심으로 제도를 설계하면, 스테이블코인 발행 기업의 주가가 올라 성공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사용이 없는 코인이 투기 수단으로 변질되면 가격에 거품이 생기고, 금융 사고로 국민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
디지털 자산 정책은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디지털 자산 정책은 명확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공통적으로 미국 중심의 금융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해 CBDC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중앙은행이 주도하는 CBDC를 통해 알리페이 같은 민간 플랫폼을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다. 러시아는 스위프트에서 배제된 이후, 디지털 루블을 통해 제재를 우회하려는 현실적인 목적이 있다. 유럽연합(EU)은 디지털 유로를 현금 대체 수단으로 간주하며, 자산 활성화보다 규제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CBDC를 금지했다. 배경은.
“미국은 정부의 개인정보 수집이나 감시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또한 페이팔(Paypal) 등 민간 주도의 금융 혁신 전통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다. 그래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CBDC보다 민간이 발행하되 규제 틀 안에서 운용되는 스테이블코인을 장려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잡았다. 스테이블코인을 단기국채에 연동시키면 국채 수요를 증가시킬 수 있어 정부에도 이익이다. 민간과 정부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구조다. 미국은 서클, 테더 등 발행사와 아마존 등 사용자 그리고 국민 등 3자 간 이해관계를 조화롭게 반영해 법안을 설계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현실적으로 추진하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스테이블코인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목적과 전략이 선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주요 플랫폼 기업에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할 의사가 있는지를 먼저 물어봤어야 했다. 국내 생태계에만 한정할 것인지, 국제 거래로 확장할 계획이 있는지도 검토해야 한다. 발행사에 준비금 확보 방안, 사용자 보호 대책 등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이런 논의가 생략된 채 미국의 지니어스법을 그대로 따온 듯한 인상을 준다. 그렇게 되면 생태계 없이 제도만 만드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할 분야는.
“솔직히 잘 보이지 않는다. 블록체인 기술이 사용처를 지정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역화폐로는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Plus Point
“지니어스법, 스테이블코인 규범화 차원…준화폐 기능? 과잉 해석”
암호화폐 업계는 미국의 지니어스법 통과를 스테이블코인이 준(準)화폐로 기능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계기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김승주 교수는 이러한 해석에 비판적이다. 그는 “지니어스법은 기존에 있던 스테이블코인을 제도적으로 규율한 것일 뿐, 그 자체가 화폐로서 기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로서는 민간이 발행한 스테이블코인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기 위해 준비금 보유, 회계 감사, 정부 보고 의무 등을 부과하는 초기적 규제 단계에 머물러 있다” 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탈중앙화로 투명성을 극대화해서, 화폐금융 질서를 재편하는 것은 궁극적인 목표”라면서 “지금 그게 가능하다는 것은 기술을 모르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스테이블코인을 은행권 중심으로 발행하자는 한국은행(한은)의 입장에도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김 교수는 “디지털 금융 혁신은 이미 토스나 카카오뱅크 등 핀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전통 은행에 스테이블코인 발행 권한을 집중시키는 것은 기술 진보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라며, “이는 오히려 금융 사고를 방지해야 하는 정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고 했다.
한은의 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한때는 인터넷뱅킹 등 국내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CBDC가 불필요하다고 하다가, 이후에는 카카오와 1차 실험을 진행했고, 다시 2차 실험은 중단한 상태다. 그 와중에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며 “한은이 추구하는 전략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