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배터리·바이오 분야 우리 기업들이 미국의 탈(脫)중국 공급망에 기여하는 대규모 수주를 하거나 대미 직접 투자를 한다는 발표가 최근 러시를 이루고 있다. 한국이 미국을 상대로 험난한 관세 협상을 벌이는 가운데, 우리 기업들이 최전선의 협상단을 일제히 ‘측면 지원’하고 나선 모양새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가 미국 워싱턴DC에 집결하고 있는 상황이라, 추가 투자 발표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은 “5조9442억원 규모의 ESS(에너지 저장 장치)에 들어갈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공급 계약을 수주했다”고 30일 밝혔다. 단일 계약 기준 역대 최대 규모의 ESS 수주다. 비밀 유지 계약 탓에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로이터는 배터리 구매자가 테슬라라고 보도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앞으로 3년간 미국 현지 공장에서 배터리를 생산해 테슬라에 공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LFP 배터리는 중국 기업들의 주력 제품이었지만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에서 중국을 대체하기 시작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도 지난 28일 테슬라에 22조7648억원(약 165억달러) 규모 자율주행 시스템 반도체를 8년간 공급하기로 했다. 내년 말 완공되는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 공장에서 현지 생산한다. 다음 날인 29일엔 셀트리온이 “7000억원을 투자해 미국 현지 바이오 의약품 생산 공장을 인수하고 증설한다”고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산 의약품에 15% 이상의 관세를 매기겠다며 제약사들에 미국 내 생산·판매를 요구하고 있다. 국내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는 미국 내 의약품 가격을 낮추고 싶어하는데, 이를 위해선 저렴한 바이오시밀러(복제약) 제조에 특화된 K바이오와의 공급망 협력이 필수라는 점을 협상에서 강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