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조선소가 함께 배를 만들고 ‘미국 국적’으로 등록을 시도하는 첫 사례가 나왔다. 미국 연안에서 운항하는 선박은 법적으로 미국에서 건조돼야 하는데, 이를 우회하기 위해 양국 조선소가 협업해 공동 건조에 나선 것이다.

한화오션은 미국 내 조선소인 ‘한화필리십야드(필리조선소)’와 거제조선소 간 협업을 통해 미국에서 운항 가능한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건조에 나선다고 22일 밝혔다. 이를 위해 한화필리십야드와 3480억원 규모의 LNG 운반선 1척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은 한화오션의 미국 해운 계열사 한화쉬핑이 한화필리십야드에 LNG 운반선을 발주하고, 한화필리십야드가 미국 조선소 자격으로 계약을 체결한 뒤 한화오션과 하청 계약을 맺는 구조로 이뤄졌다.

해당 선박 건조의 상당 부분은 한화오션 거제 사업장에서 이뤄진다. 한화필리십야드는 건조에 참여하면서 미국 해양경비대(USCG)의 법령과 해양 안전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인증 작업 등을 지원한다. 두 조선소가 공동 건조한 선박은 2028년 초 완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우회 절차를 활용하는 것은 미국 존스법(Jones Act) 때문이다. 미국 연안 항로에서 운항하는 선박은 미국에서 건조하고, 미국 국적을 보유하며, 미국인이 운영해야 한다고 규정한 법이다. 한화가 미국에 보유한 필리조선소는 시설이 노후해 당장 LNG 운반선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을 건조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같은 협업을 통해 미국에서 선박 수주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다만 선박 건조가 주로 한국에서 이뤄지는 만큼 ‘미국산’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현지 법은 ‘수입 부품이 전체 선박 건조 비용의 25% 이하’ ‘미국서 용접 등을 거쳐 구조체 완성’ 등의 기준을 명시하고 있다. 한화오션 측은 “현재 미국 내에 LNG 운반선을 지을 수 있는 조선소가 없어 현실에 맞게 법 개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에 맞춰 양국 조선소 간 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