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강조하며 국내 태양광 발전 설비를 크게 늘렸지만 정작 국내 태양광 산업 생태계는 무너지고 있다. 사진은 전남 신안군 지도읍 태천리의 태양광·풍력 발전단지 모습. /김영근 기자

하나 짓는 데 평균 6조원 안팎이 드는 국내 원자력발전소가 송전망이 충분하지 않은 탓에 지난봄(3월 1일~6월 1일) 닷새에 하루꼴로 전기 생산량을 의도적으로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원전은 365일 24시간 최대 출력으로 가동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그런데도 원전을 끈 것은 송전망이 부족한 상황에서 태양광이나 풍력 등으로 만든 전기를 먼저 다른 지역으로 보내기 위한 ‘고육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21일 전력거래소와 한국수력원자력 등에 따르면 전력 수요가 연중 가장 작은 편인 지난 봄 93일 가운데 전력거래소가 전국 원전에 발전량을 줄이라고 지시한 날은 총 19일에 달했다. 이에 따라 짧게는 하루 1시간, 길게는 6시간 40분까지 가동을 줄인 곳도 있었다. 특히 주변에 태양광발전 설비가 많은 전남 영광의 한빛 원전은 이 기간 동안 가동을 멈춘 시간이 142시간에 달했다. 풍력 설비가 인근에 많은 경북 울진의 한울 원전도 가동 중단 시간이 총 70시간에 달했다.

전력 수요가 적은 시기에 전력 공급이 지나치게 많으면 전력망에 부담을 준다. 하지만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요가 많은 수도권 등으로 신속하게 보내면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송전망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원전과 태양광, 풍력 설비가 동시에 지역에서 전력을 생산하다 보니 발전 설비를 끄는 것 외에는 뾰족한 대응 수단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민간 사업자가 대부분인 태양광 설비로 만든 전력을 다른 곳으로 보내고, 상대적으로 정부가 쉽게 통제할 수 있는 원전 가동을 일부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도 “원전 가동 중단이 잦아지면 장기적으로는 발전 설비의 안전 문제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태양광 설비가 가파르게 늘고 있어 앞으로 이런 일이 더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예컨대 지난해 국내 태양광발전 설비는 전년 대비 3.1GW(13.1%) 늘면서 증가세가 가팔라지고 있다. 한 에너지 업계 교수는 “비싼 전기인 재생에너지를 돌리려고 값싼 원전 발전을 줄이겠다는 건 경제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호남 지역뿐 아니라 충청 지역에서도 태양광 때문에 출력 제어가 빈번해질 수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