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겸 SK 회장이 지난 17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대한상의 하계 포럼’ 기자 간담회에서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과 국내외 경영 상황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대한상의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 회장이 한국의 제조업에 대해 “잃어버린 10년을 맞았다”며 “AI로 우리가 다시 제조업을 일으키지 못하면 10년 후 한국 제조업의 거의 상당 부분이 퇴출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 회장은 지난 17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대한상의 하계포럼’ 기자간담회에서 “10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워닝(경고)을 했고 새로운 산업 정책과 전략을 내놔야 한다고 했지만 ‘잘되고 돈 잘 버는데 뭐’라면서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과거 중국 수출을 많이 하면서 한국 제조업이 호황을 맞았는데 중국 제조업 실력이 업그레이드되면서 대중 수출이 줄고 제3국 시장에서도 중국과 전부 경쟁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한국이 석유화학 등에서 이제 중동이나 인도, 중국의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면서 “반도체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중국의 추격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고 털어놨다. “미국이 수출을 제한하는 바람에 중국이 살기 위해 엄청난 리소스를 때려 부었고 실패해도 계속 밀어줘서 이젠 거의 턱밑까지 쫓아온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새 한국 제조업은 제자리걸음을 걸었을 뿐 아니라 노화(老化)됐다”고 했다.

최 회장은 한국 제조업을 일으킬 해법으로 ‘인공지능(AI)’을 꼽았다. 그는 “희망을 AI에 거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며 “AI마저도 중국이 어플라이(적용)하는 속도가 저희보다 더 빠르지만, 아직 초기이기 때문에 우리가 빨리 캐치업해서 경쟁해야 한다”고 했다.

최 회장은 최근 EU(유럽연합)와 비슷한 ‘한일 경제 공동체’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최 회장은 이날 회견에서도 “우리는 데이터 사이즈가 작기 때문에 일본과 손잡고 서로 데이터를 교환해 섞어 쓸 수 있으면 AI에서도 조금 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최 회장은 이재명 정부에 대해 “제대로 된 성장을 위해선 민관이 원 팀이 돼야 한다”며 “새 정부가 좋은 리더십을 많이 발휘하길 기대하고, 또 그럴 수 있도록 서포트를 할 생각”이라고 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 노란봉투법, 자사주 의무 소각 등에 대해선 “대응을 잘해야 할 것 같다”면서도 “하나를 들어주되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다른 부분을 얻거나, 규제를 풀어줘서 재계가 전체적으로 나아지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최 회장은 오는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CEO 서밋 의장을 맡아, 행사 준비를 총괄하고 있다. 그는 “(숙소·교통 등) 물리적인 준비는 어떻게든 맞출 수 있을 것”이라며 “더 걱정인 것은 APEC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선 소프트한 것들이 필요하다는 점”이라고 했다. 여러 기업과 정부 관계자들이 핵심 주제를 논의하고 그 안에서 실질적인 협상과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충실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최 회장은 간담회 당일 나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대법원 무죄 판결과 관련해선 “늦었다고 보지만 아주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제 개인적인 감정은 있다”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