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뉴스1

삼성전자가 최근 M&A(인수합병)를 속속 발표하면서 ‘미래 삼성’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속도가 늦다’는 지적을 받았던 삼성전자는 작년부터 총 6건, 올 들어서만도 지난 7일 미국 헬스케어 기업 ‘젤스(Xealth)’ 인수까지 벌써 세 번째 M&A를 끝냈다.

지난해 인수한 소니오(의료기술), 옥스퍼드 시멘틱 테크놀로지스(AI), 레인보우로보틱스(로봇)까지, M&A 분야는 제각각이다. 하지만 삼성의 전략적 지향점이 공통적으로 녹아있다. 첫째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낼 고성장 분야를 찾고, 둘째 세계 최강 하드웨어 경쟁력에 AI 서비스를 접목하겠다는 것이다. 대규모보다 ‘마이크로 M&A’를 수시로 단행하며, 강점을 더 키우고 수익 기반을 강화하는 애플의 행보와 닮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래픽=이철원

◇기존 사업의 확장

삼성 M&A의 첫 키워드는 ‘기존 사업의 확장’이다. 잘 모르는 신사업보다는 철저히 반도체와 스마트폰, 가전이란 큰 줄기에서 가지를 뻗으며 새 먹거리를 만들어 가는 전략이다. 예를 들어 독일 플랙트 인수는 삼성이 경쟁력을 보유한 기존 공조 사업의 확장이다. 삼성은 그간 ‘개별 공조’라 불리는 가정·상업용 시스템 에어컨 시장을 주로 공략해왔지만, AI 시대를 맞아 데이터센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자 ‘중앙 공조’ 시장으로 영역을 넓혔다.

바워스 앤드 윌킨스(B&W) 브랜드로 유명한 미국 마시모의 오디오사업부를 인수한 것도 스마트폰, TV와 전장(電裝·차량용 전자장치)에 고품질 사운드를 접목해 삼성의 브랜드 파워를 키우겠다는 포석이다. 삼성 사정에 정통한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갑자기 우주 사업에 뛰어든다면 잘하기도 어렵고 리스크도 클 것”이라며 “기존에 강점을 가진 사업과 연관되면서도 고성장이 예상되는 신사업 분야를 공략하려는 전략”이라고 했다.

◇HW 중심에서 ‘AI 기업’으로

‘하드웨어(HW)를 넘어, AI로 돈을 벌겠다’는 기조도 분명히 드러난다. 연간 5억대 이상의 스마트폰, TV, 가전 등 기기를 전 세계에 파는 ‘삼성 HW’의 힘을 바탕으로 ‘AI 서비스’ 먹거리를 발굴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이번에 인수한 ‘젤스’가 대표적이다. 젤스는 여러 병원, 기업들이 보유한 각종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삼성은 현재 스마트폰과 워치, 링(ring·반지) 제품에서 수집한 방대한 고객 건강 정보를 갖고 있는데, 젤스는 이를 각종 의료 서비스와 연결해줄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전망이다. 삼성은 연내 ‘AI 헬스코치’ 베타 버전을 내놓고, 상용화 테스트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삼성 관계자는 “AI로 건강 데이터를 분석해 의사의 처방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향후 가전제품과도 연결해 더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했다. 현재 삼성은 AI 반도체, AI 탑재 기기, AI 작동 인프라(데이터센터 공조) 등 ‘AI 가치사슬’ 시장을 전방위로 공략하고 있다.

◇‘게임체인저’ 인수는 안 보여

삼성은 이재용 회장이 신기술 확보를 강조하면서, 8년 만의 조(兆) 단위 계약(약 2조3000억원)이었던 독일 플랙트 그룹 인수전에서 유럽 지멘스 등과 맞붙어 속전속결로 계약을 따냈다. 전장 사업부 격인 하만의 성장에서 보듯 ‘외부 기업을 사와서 키우는 문화’도 발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시장의 판도를 바꿀만한 ‘게임 체인저’에 대한 베팅은 아직 없다. AI, 로봇, 헬스케어 등 유망 분야에 조금씩 발을 담그고 있지만 어느 분야에서도 삼성이 ‘기술 주도권’을 쥐었다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 선밸리 콘퍼런스 참석 등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적극 가동하고 있는 이재용 회장으로선 이런 한계를 넘어설 다음 M&A 타깃을 고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