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왼쪽부터),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특별위원장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경제 6단체 상근부회장단 상법 간담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이달 4일까지 ‘상법 개정안’을 처리한다고 예고한 가운데, 국내 기업들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당장 각종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개정안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종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해 소액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기업의 중장기 비전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을 때도, 당장 주가에 악영향을 미치면 이사가 배임(背任)으로 소송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경제 단체 관계자는 “주주는 ‘불특정 다수’인 데다 이해관계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이들의 이익을 모두 확인해서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신속한 투자 결정도 하지 못하게 된다”며 “소액주주를 보호한다는 취지와 다르게 외국계 헤지펀드가 경영권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도 크다”고 했다.

최근 기업들은 상법 개정안을 강력하게 반대해 왔지만, 어쩔 수 없이 ‘협상 모드’로 후퇴한 상태다. 국민의힘까지 전향적 입장을 내는 등 국회 처리 가능성이 높아진 탓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 개정안은 어느 하나를 독소 조항이라고 꼽기 어려울 만큼 모든 내용이 기업의 경영권을 심각하게 흔드는 내용”이라며 “시행이 불가피하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안을 찾자는 취지”라고 했다.

실제로 30일 민주당과 간담회 하면서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은 ‘체급별’로 다른 제안을 내놨다. 대기업 중심 경제 단체들은 개정안의 5가지 핵심 조항 가운데, 2가지(이사 충실 의무 확대, 전자 투표제 의무화)만 먼저 시행하고 나머지는 논의를 거쳐 추후에 도입하자는 제안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엔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 주주, 특수 관계인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 룰’과 집중 투표제 의무화, 독립 이사 확대가 포함됐다.

중소·중견기업계는 기업 여건상 이런 문제를 담당할 인력과 능력도 없고, 자산 규모가 작아 외부 투기 세력의 경영권 위협에 취약한 만큼 ‘일정 기준 이하 기업에는 법 적용을 유예해 달라’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