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달 8일로 예정된 상호 관세 유예 기한의 연장을 시사했다. 11일(현지 시각) 미 워싱턴 DC 케네디센터를 찾은 자리에서 이날 스콧 베선트 재무 장관이 언급한 ‘무역 협상 기한 연장 가능성’에 대한 취재진의 물음에 “그렇다”고 답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기한 연장이 ‘필수적’이지는 않다”고 덧붙여 ‘진의’를 두고 설왕설래가 오갔다. 한미 양국이 애초 7월 8일까지 마련하기로 했던 ‘7월 패키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이 같은 의문들을 외신과 전문가들을 통해 분석해봤다.

◇협상 기한 유예에 무게

이날 하원 청문회에 출석한 베선트 재무 장관은 “미국과 협상에 성실히 참여하는 국가들에 대해선 관세 부과가 유예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다만 협상에 참여하지 않으면 유예도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미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베선트 장관의 발언은 관세 유예 기한이 바뀔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알리는 신호”라고 풀이했고, 미 CNBC도 “기한이 다가올수록 트럼프 정부가 일정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도 질문에 이를 부인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상 다음 달 8일 유예 기한은 연장이 유력하다는 관측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우리 측이 유예를 요청하면 받아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성규

◇유예는 왜?

트럼프 정부가 지난 4월 9일 추가 상호 관세 부과를 석 달간 유예하고, 세계 각국과 협상에 나선 지 두 달이 지나도록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자 다음 달 9일로 예정된 부과 시점을 미루며 시간을 벌려고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 중국, 인도 등 주요 무역 상대 18국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결과물을 낸 곳은 영국과 중국 두 나라뿐이다. 허윤 서강대 교수는 “트럼프 정부 입장에서는 애초 관세 협상을 통해 기대했던 ‘전리품’을 당장 얻기 어렵자 기한을 연장하면서 정치적인 리스크를 줄이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무적으로도 18국과 동시에 협상에 나서면서 300명에 못 미치는 미 무역대표부(USTR) 인력 규모로는 90일 내에 협상을 마무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굿캅과 배드캅

트럼프 대통령이 “기한 연장이 필수적이지는 않다”며 베선트 장관의 발언을 부인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이를 두고선 ‘굿캅(Good Cop)’ ‘배드캅(Bad Cop)’으로 역할 분담을 한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베선트 장관이 유화책을 펴자, 트럼프 대통령이 반대로 강경하게 나서며 각국을 압박한다는 것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몇 주 안에 수십 국에 조건을 명시한 서한을 보내 수용 여부를 판단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장상식 원장은 “트럼프가 자신의 관세 협상 성과를 강조하기 위해 속도를 늦추지 말라는 메시지를 덧붙인 것”이라고 진단했다. 충격적인 정책을 발표해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유예·번복을 거듭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를 두고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트럼프는 언제나 겁먹고 물러난다)’라는 비판이 커지자 이를 의식했다는 풀이도 나온다.

◇‘7월 패키지’ 시간 벌어

협상 기한이 유예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우리 정부로서는 전열을 재정비할 기회라는 분석이 나온다. 관세 인하·철폐를 위해 다음 달 8일까지 마련하기로 했던 ‘7월 패키지’ 일정이 늦춰질 수 있는 것이다.

새 정부가 협상 팀을 다시 갖추고, 미국을 더 구체적으로 설득할 시간을 벌었다는 진단이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새 정부가 협상의 큰 그림부터 디테일까지 새로 시작한다고 보면 된다”며 “전 부처 차원에서 산업과 에너지, 투자, 통상을 망라하도록 대미 통상 TF(태스크포스)를 확대 개편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대미 수출 1위 품목인 자동차에 관세 25%가 4월부터 붙고 있고, 철강 관세가 이달 들어 50%로 오르며 사실상 대미 수출이 막힌 상황에서 마냥 시간을 늦출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단장은 “조선, 알래스카 LNG(액화천연가스), 에너지 수입 등 우리가 가진 카드도 많다”며 “전략을 잘 세워 협상에 나선다면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