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는 최근 자체 제작한 드라마 ‘신병 3’의 주요 내용을 1분 내외로 요약한 숏폼 영상을 유튜브로 배포하고 있다. 핵심 장면을 보여주고, 내레이션으로 상황을 설명해 주는 것 등 보통 유튜버들이 만든 영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KT의 숏폼은 인공지능(AI)이 만든 것이다. 사람이 약 1시간짜리 영상을 숏폼으로 만들 때 20분쯤 걸리는데, AI에 이와 비슷한 품질로 숏폼을 만들게 하면 2분이면 된다. 또 1시간짜리 원본 영상으로 길이가 다른 숏폼 50개를 약 10분 안에 만드는 일도 가능하다.

미디어·방송 업계에서는 AI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영상 촬영·편집·콘텐츠 검색·마케팅 등 콘텐츠 제작 과정 전반에 변화가 대거 일어나고 있다. 숏폼 제작이나 자막 삽입, 콘텐츠 검색은 물론이고 사람이 직접 해야만 했던 핵심 장면 편집이나 실시간 스포츠 경기 분석 등을 AI가 대신 하는 일이 늘고 있다. 이미 제작된 콘텐츠에 자연스럽게 제품 광고를 삽입하는 AI도 등장해 광고 시장 판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배우의 출연료나 제작진 인건비 등 각종 비용이 치솟는 상황에서 AI 활용은 각 분야 기업들의 핵심 화두로 떠오르는 중이다.

쿠팡플레이는 AI로 K리그 축구 경기의 선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시청자와 해설진에게 제공한다. /쿠팡플레이

◇숏폼 제작 2분이면 충분

숏폼 제작 분야는 최근 AI가 가장 활약하는 곳이다. 이용자 수도 많은 데다 빠르게 트렌드가 변화하며, 경쟁이 치열해서 단기간에 많은 영상을 제작해 ‘질보다 양’으로 승부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KT는 올 1월 출범한 ‘AI 스튜디오 랩’의 제작용 홈페이지에 영상을 올린 다음, ‘병사들이 작업하는 장면을 위주로 편집해 줘’ ‘로맨틱한 대사가 있는 장면을 모아줘’ 등의 명령을 입력하고 ‘리뷰형’ ‘예고편형’ 등 형식을 고르면 숏폼을 만들 수 있게 했다.

인공지능(AI)으로 자동 생성된 KT의 자체 제작 드라마 ‘신병 3′의 숏폼 영상. /KT

프로 축구 K리그 경기를 중계하는 쿠팡플레이는 주요 경기마다 스포츠 스타트업 ‘비프로’와 협업한 AI 데이터 분석 결과를 시청자와 해설진에게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선수들이 슈팅하거나 드리블할 때의 동작이나 속도, 이동 거리 등을 보여줘 재미를 키운다. 과거에는 사람이 슬로모션 화면 등을 보며 별도로 분석하던 것을 AI가 더 빨리 해내고 있는 셈이다.

위성방송 기업 KT스카이라이프는 작년 하반기부터 스타트업 ‘호각’과 함께 축구, 농구 등 각종 생활 체육 경기를 사람을 거의 쓰지 않고 AI 카메라만으로 촬영·중계하고 있다. 별도 촬영 인력 없이 경기장 중앙쯤에 설치된 AI 카메라가 경기를 뛰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촬영한다. 촬영된 영상을 저장하고 방송으로 송출하는 것도 AI 몫이다. 스카이라이프 관계자는 “지상파 스포츠 경기 중계에 투입되는 인력이나 장비의 10%만 있어도 제작이 가능하다”고 했다.

◇검색·광고 등 다방면 활용

콘텐츠 제작뿐만 아니라 검색이나 광고 분야에도 AI 도입이 이어진다. 넷플릭스와 티빙 등 OTT는 AI를 활용한 검색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속이 후련해지는 액션물을 보고 싶어’와 같이 일상에서 쓰는 대화형 문장으로도 검색·추천이 되게 하는 게 목표다. 넷플릭스는 이달 초 아이폰 앱에 이 같은 기능을 시범 도입했다.

tvN 요리 예능 프로그램의 한 장면. 촬영 당시에는 없던 매일유업 두유 제품이 AI 편집을 통해 간접광고(PPL)로 삽입됐다. /CJ ENM

광고 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간접광고(PPL)가 대표적이다. PPL은 원래 콘텐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광고 대상 제품이 노출되게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예능이나 드라마 등 콘텐츠가 크게 인기를 끈 뒤, 광고 제안이 추가로 들어와도 촬영이 모두 끝났다면 이를 반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AI 도입으로 촬영이 끝난 콘텐츠에 등장하는 일반 생수병을 광고 대상인 음료수 병으로 바꾸는 것 같은 일이 가능해졌다. CJ ENM은 지난 2월 산하 방송사 tvN의 예능 프로그램에 이렇게 사후 PPL을 도입했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셰프 에드워드 리가 요리 재료로 매일유업의 두유를 썼는데, 콘텐츠 제작이 끝난 뒤 매일유업과 협의해 AI로 콘텐츠 곳곳에 두유가 노출되는 장면을 추가로 삽입한 것이다.

그래픽=송윤혜

SK브로드밴드도 지난 3월부터 유료 방송으로 송출되는 소상공인용 광고 제작에 AI를 도입했다. 지역 소상공인이 매장 사진과 동영상, 키워드와 요구 사항 등을 홈페이지에 입력하면 광고가 제작된다. 이를 통해 광고 제작 소요 시간을 기존 3일에서 10분으로 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