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거제 조선소 찾은 트럼프 父子 - 도널드 트럼프(맨 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장남 트럼프 주니어(가운데)가 1998년 6월 경남 거제시에 있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옥포조선소를 찾았을 때의 모습.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부동산 사업가로서 한국 내 ‘트럼프월드’ 브랜드의 주택 사업 등과 관련한 투자 논의를 위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는 그때 조선소의 상징이기도 한 높이 100m짜리 골리앗 크레인을 보고 ‘한번 올라가 보고 싶다’고 했고 실제 크레인 정상에서 “원더풀, 어메이징” 감탄사를 연발했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통화를 마친 직후 트루스소셜에 ‘원스톱 쇼핑‘을 강조하며, ‘조선업 협력‘과 ‘대규모 미국산 LNG(액화천연가스) 구매’ ‘알래스카 가스관 합작 투자’ 등을 언급했다. 각국을 향해 관세율을 낮추려면 ‘카드‘를 내놓으라는 태도를 보이던 트럼프 대통령이 거꾸로 카드를 제시하기는 이례적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가진 조선업, 중국·일본과 함께 세계 3대 수입국인 LNG가 25%에 이르는 상호 관세율을 내리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날 미국에 도착한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도 “(조선과 LNG 인프라 건설 등은) 우리가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조선업은 미국의 사정이 급하다. 중국 해군력이 미 해군을 넘보는 현실에서 함정 건조와 유지 보수가 급한 미국이 K조선에 손을 내민다는 것이다. 미 해군은 앞으로 30년간 364척 구매에 1조750억달러(약 1600조원)를 들이기로 한 데 이어 군함 건조를 동맹국에 맡길 수 있도록 관련 법도 60년 만에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조선사들도 계산기를 두들기며 미국에서 보폭을 넓힌다. 지난 7일 HD현대는 미국 최대 군함 조선소인 헌팅턴 잉걸스와 공정 자동화와 로봇, 인공지능(AI) 도입 및 생산 인력 교육 등에 협력하기로 했고, 지난해 6월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한화오션은 내년까지 군함 건조를 위한 인증을 받고 현지 특수선 시장에 진입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한 조선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우리 수출액이 가장 많은 나라가 중국과 미국인데, 이 두 나라에 수출한 선박은 거의 없었다”며 “이번 협력이 미국 시장 진출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본부장, USTR 대표와 관세 논의 - 8일 정인교(오른쪽)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 워싱턴 DC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만나 미국 측의 상호 관세 조치 등에 대한 논의를 하기 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조금 더 어려운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복해 강조할 정도로 공을 들이고, 앞서 대만이 대규모 구매 의사를 내비치면서 우리도 결국 미국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많지만, 최대한 상호 관세에서 양보를 받아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9일 국회에 출석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LNG 문제에 대해서는 사업성이 있는지와 어떤 형식으로 협력할 수 있는지 미국과 협의해 봐야 한다”고 말을 아낀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9~11일로 짧은 운송 기간 등은 알래스카산 LNG의 매력으로 꼽히지만, 프로젝트 성공 가능성이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에서 대규모 LNG 구매나 1300㎞에 이르는 가스관 사업 참여는 주저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의 재무 구조가 부실한 형편으로 총사업비 440억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사업에 참여할 자금을 확보하는 일도 난제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