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트럼프 2기 정부가 올 초 출범 이후 본격적 ‘관세 폭탄’을 쏟아내고, 국내의 대통령 탄핵 사태에 따른 국정 리더십 공백까지 겹치면서 반도체와 자동차 등 한국 주력 산업의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다.
위기를 맞은 올해 주요 그룹 총수들이 제시한 키워드는 ‘도전’과 ‘실행’이었다. 최태원 SK 회장은 “어려움을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 ‘지난이행(知難而行)’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했고, 구광모 LG 회장은 “지금의 익숙함이 과거에는 혁신이었듯 실패에 멈추지 않고 다시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핵심 분야에 과감히 투자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경쟁자와도 전략적으로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며 구체적 방향을 제시했다.
이미 주요 기업은 미래를 향해 키를 돌려 잡고, 불황 속에서도 핵심 기술 확보를 위한 선제적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호황일 때의 투자는 누구나 하지만, 불황기의 투자는 시장이 살아났을 때 경쟁자와 격차를 벌리며 업계를 선도할 수 있는 힘이 된다”며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투자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AI 기술력 바탕으로 생태계 구축 나서
국내 대표 기업 삼성은 인공지능(AI)과 바이오에 주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AI 분야의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삼성 중심의 생태계’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연간 5억대가 넘는 제품을 전 세계에 판매하는 삼성전자는 자사 기기 간 원활한 연결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바이스 AI’ 선도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다. 이미 자체 플랫폼 ‘스마트싱스(SmartThings)’ 사용자를 3억6000만명 이상 확보했다.
바이오도 삼성이 주목하는 미래의 핵심 축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달 창사 이래 최대인 2조원 규모의 바이오 의약품 위탁 생산(CMO) 계약을 유럽의 한 제약사에서 수주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역대 최대 규모 계약을 잇달아 경신하며 바이오를 ‘제2 반도체’로 키워가고 있다.
SK그룹은 미래 사업 영역으로 AI를 점찍고, ‘본원적 경쟁력’을 바탕으로 위기를 넘겠다는 각오다. 현재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는 SK하이닉스의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앞세워 AI 인프라·서비스 영역까지 확장을 꾀하고 있다. 주력 기업인 SK텔레콤은 AI 데이터센터, 멀티 LLM(거대 언어 모델) 사업을 추진하는 동시에 통신망과 AI를 접목하거나, 모빌리티·헬스케어·미디어 사업에 AI를 빠르게 접목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엔비디아, TSMC, 오픈AI, MS, 아마존, 인텔 등 세계 AI 산업을 이끄는 빅테크 리더들을 잇따라 만나며 글로벌 빅테크와 협업할 기회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신사업, 연구 개발 중심 대규모 투자
LG는 ‘ABC(인공지능·바이오·클린테크)’를 미래 먹거리로 삼고 집중적인 연구 개발(R&D)과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2028년까지 5년간 100조원 규모의 국내 투자를 단행하기로 한 가운데 50조원 이상을 미래 성장 사업과 신사업에 투자하기로 했다. LG는 20~30년가량의 투자를 바탕으로 자동차 부품, 배터리가 오늘날 주력 사업이 된 것처럼 ABC가 LG의 미래 핵심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구광모 회장은 현장을 직접 뛰며, 미래 성장 동력 발굴에 나섰다. 지난해 6월 미국 실리콘밸리의 AI 반도체 설계 업체 ‘텐스토렌트’와 AI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피겨 AI’를 찾은 것이 대표적이다. 2023년에는 전 세계 바이오 기업·연구 기관이 밀집한 미국 보스턴의 항암 연구 기관인 다나파버 암센터와 주요 스타트업이 밀집한 랩센트럴을 찾아 최신 바이오 기술 동향을 살피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기업들과 잇따라 ‘기술 동맹’을 맺고 있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박람회 ‘CES 2025’에서 엔비디아와 자율 주행, 로봇 등 사업 전방위로 협력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엔비디아의 로보틱스 플랫폼 ‘아이작’으로 AI 로봇을 개발하고, 현실 세계를 가상으로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 플랫폼 ‘옴니버스’를 활용해 신규 공장 구축과 운영 과정을 가상에서 시뮬레이션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인 24조3000억원의 국내 투자를 단행한다. 전체 투자액의 절반가량인 11조5000억원을 연구·개발(R&D) 분야에 쓰고, 생산 시설과 제조 혁신에도 12조원을 투입한다. 자율 주행과 인공지능(AI) 등 미래 사업 분야에도 8000억원을 투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