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계 최강의 조선 강국이었던 미국은 아이러니하게도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법 때문에 경쟁력을 잃었다. 1920년 상선을 대상으로 ‘미국 내에서 건조된 선박에 한해서만 미국 내 해상 운송을 허가한다’고 규정한 ‘존스법’이 대표적이다. 이어 1965년과 1968년에는 미 군함을 겨냥해 ‘미군 선박과 주요 부품은 외국 조선소에서 건조할 수 없다’는 내용의 ‘번스-톨레프슨 수정법’이 제정됐다. 이 두 법으로 인해 미국 조선 업계는 해외 업체와 경쟁을 피한 채 안정적인 물량을 수주 가능한 독점권을 얻었지만, 이것이 결국 독(毒)이 됐다.

미국은 민간 선박과 군용 선박 분야 모두 세계 최강의 조선 역량을 갖추고 있었지만, 2차 세계대전(1939~1945년) 이후 경쟁력을 빠르게 잃었다. 미국의 조선소는 전성기에 400여 곳에 달했지만 수백 곳이 문을 닫아 지난해 기준 수주 잔고가 있는 곳은 21곳에 불과하다. 시장조사 업체 클라크슨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발주된 선박 2412척 가운데 미국이 수주한 것은 12척(0.5%)뿐이었다. 신영증권 엄경아 연구원은 “최근 10년 새 미국이 선박 수주 점유율 1%를 넘은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세계 선박 수주와 건조 시장에서 존재감이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미 해군의 군함 건조와 수리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지난해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10년간 구축함 23척을 건조했지만 미국은 11척에 그쳤다. 장거리 임무 수행 능력을 갖춘 순양함의 경우에도 중국은 2017년 이후 8척을 지었지만 미국은 한 척도 만들지 못했다. 중국 군함의 약 70%가 2010년 이후에 진수됐지만, 미국 해군은 이 비율이 25%에 불과하다.

현재 진행 중인 미 해군 군함 건조 역시 짧게는 12개월에서 길게는 36개월까지 지연되고 있다. 미 해군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컬럼비아급 탄도미사일 잠수함 프로그램은 2013년 이후 줄곧 해군의 최우선 프로그램으로, 10년 이상 모든 자원을 우선적으로 활용하고 일정 지연을 막기 위해 상당한 관리를 해왔음에도 12~16개월 지연이 예상된다”며 “현재 해군 조선업이 직면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