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집된 이산화탄소를 운반해 해저에 묻어 주는 ‘서비스 사업’으로 세계 첫 시도입니다. 이 배로 실어나른 이산화탄소는 북해 해저에 연간 500만t(톤)까지 저장할 수 있게 됩니다.”
지난 17일 싱가포르 케펠 터미널에 입항한 이산화탄소 운반선 ‘노던 패스파인더’ 갑판 위. 잉바르 벤모 선장은 배에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는 배관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CO₂ carrier(운반선)’라고 적힌 130m 길이의 이 배에는 액화 이산화탄소를 영하 35도에서 운반할 수 있는 3750t 규모 탱크가 2개 실려 있었다. 올해부터 덴마크 바이오매스 발전소와 네덜란드 비료 공장 등에서 1년간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123만t을 포집해 노르웨이 베르겐의 이산화탄소 저장 시설까지 실어나르는 역할도 맡는다.
◇첫 CCS 상업화 나선 유럽 석유 3社
노르웨이 에퀴노르, 영국 셸, 프랑스 토탈에너지스 등 유럽 3대 석유회사가 설립한 합작회사 ‘노던 라이츠’가 탄소 포집·저장(CCS) 상업화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동안 발전소나 공장 등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포집부터 저장까지 자국 내에서만 자체적으로 처리해왔다. 그러나 막대한 비용과 시간으로 기술 개발에 어려움이 커지자, 여러 나라와 기업이 공동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왔다. 세 석유 회사가 노르웨이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지난 2020년부터 협력에 나선 이유다.
세 회사는 지난해 노르웨이 베르겐에 150만t 규모의 이산화탄소 저장 시설을 준공한 데 이어, 올해부터는 이 규모를 최대 500만t까지 늘려나갈 계획이다. 이 시설을 거쳐 이산화탄소를 영구 저장하게 될 노르웨이 북해 해저 2600m 깊이 염수층에는 총 1억2500만t 규모의 이산화탄소를 보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자동차 6500만대가 1년에 배출하는 양이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관련 기술 개발에도 어려움이 많다”는 부정적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텡 후아 리 셸 해양 부문 아시아·태평양 총괄은 “초기 비용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초기 자본을 마련한 만큼 앞으로 거래량이 늘면서 비용은 자연스럽게 경감될 것”이라고 했다.
◇탄소배출 줄이는 최종 목표 ‘CCS’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화석연료 기조 강화’ 전망과 함께, 에너지 업계에선 CCS가 에너지탄소 배출을 줄이는 획기적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글로벌 이산화탄소 포집 용량은 2022년 4500만t에서 오는 2030년 10억2400만t, 2050년에는 60억4000만t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 에너지 기업 엑손모빌도 2050년 세계 CCS 시장 규모가 4조달러(약 578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한국 역시 CCS 시장 진입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이미 2021년 생산을 마친 동해 가스전 일대에 CCS 인프라 구축을 위한 예비 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와 함께 지난해 초 제정된 ‘이산화탄소 저장·활용법’(CCUS법)은 다음 달 7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이 시행되면 정부는 이산화탄소 포집 시설과 저장소 확보 방안 등을 포함한 구체적인 계획을 매년 수립해야 한다.
국내 업계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HD현대미포는 지난해 8월부터 세계 최대 규모인 2만2000t급 액화 이산화탄소 운반선 4척을 국내 조선사 중 최초로 건조하고 있다. 이는 올 11월부터 인도될 예정이다. 또 석유화학 업계는 여수, 울산, 대산 등에 이산화탄소 포집을 위한 액화 터미널 조성 방안도 정부와 계속 논의하고 있다. 자린 자파렐 셸 CCS 아시아·태평양 총괄은 “이미 기술과 능력이 충분한 한국이 CCS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조선(造船) 역량이 뛰어난 한국에 이산화탄소 운반선 건조 사업을 발주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탄소포집저장(CCS)
발전소나 공장에서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CO₂)를 포집한 후 압축·수송 과정을 거쳐 지하 깊은 곳에 안전하게 저장하는 기술. 배관이나 선박으로 운반한 CO₂를 고갈된 유전·가스전·염수층 등 지하 800m 이상 깊은 땅속에 주입해 저장한다.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대표적인 기술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