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한국 재계 인사들이 대거 미국으로 향했다. 10일(현지 시각)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와 미 상공회의소가 공동으로 미 워싱턴 DC에서 개최한 ‘제35차 한미재계회의 총회’ 때문이었다. 한경협 측은 이 회의는 1998년부터 지속된 양국 경제인 간 연례 행사인데, 올해엔 역대 최대인 40여 명의 국내 재계 사절단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 출범을 한 달여 앞두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칩스법) 개정 가능성 등 경영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 최근의 탄핵 정국으로 정부 공백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한국 경영계의 다급함과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의 새 정부가 들어서 정책은 바뀔 수 있어도 비즈니스 상대는 그대로”라며 “한미 기업인들이 모여 상호 협력을 굳건히 하겠다는 취지”라고 했다.
◇5년 만에 美서 열려…韓 역대 최대 참석
이날 회의의 핵심은 ‘트럼프 2기’의 정책 불확실성을 강력한 ‘기술 동맹’으로 헤쳐 나가자는 것이었다. 한미재계회의 한국 측 위원장인 류진 한경협 회장은 개회사에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들은 비즈니스 환경에 다양한 변화를 예고했다”며 “양국 경제계가 더욱 긴밀한 협력을 통해 새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류 회장은 “반도체, 배터리 같은 첨단 산업을 비롯해 트럼프 당선인이 강조하는 소형모듈원자로(SMR), 조선·방위산업 등 한국 기업이 세계적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분야에서도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미국 측 위원장을 맡고있는 글로벌 보험사 처브(Chubb)그룹의 에반 그린버그 회장도 “한국은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이자 파트너이며, 강력하고 미래 지향적인 한미 관계의 중심에는 양국 경제인이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한미재계회의는 한경협과 미 상공회의소가 양국 경제협력과 유대 강화를 위해 1988년 설립한 민간 차원의 경제협력 논의 기구다. 매년 양국을 오가며 개최하지만, 코로나 등의 이유로 미국에서 열리는 것은 5년 만이다. 이번 행사에는 류진 회장을 비롯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이장한 종근당 회장,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윤영조 삼성전자 부사장, 김동욱 현대차 부사장, 손상수 SK아메리카 부사장 등 40여 명이 참석했다. 미국에서도 주요 기업 회장과 CEO 등이 참석해 총 60여 명 규모로 진행됐다.
◇탄핵 정국 우려도… “어려운 여건에도, 긴밀 협력”
한국 정부의 계엄령 선포에 이은 탄핵 정국 역시 양국 경제인들의 관심사였다. 이날 양측은 공동 선언문에서 “한국의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양국 경제계를 중심으로 흔들림 없이 긴밀한 협력과 강력한 경제적 유대를 지속해 나갈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양국 재계 인사들의 만남에서도, 두 나라 모두 정권 교체기를 맞게 된 상황에 대한 이야기들이 다수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 경제계는 양국에 진출한 기업들의 활동 안정성 보장을 촉구하는 내용을 공동 선언문에 담았다. 양측은 “기술 산업을 겨냥한 차별적 법안을 포함한 무역 장벽을 제거하고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비즈니스 및 규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양국 정부가 한미 FTA를 양자 경제협력 강화의 기반으로 재확인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전문직 비자 등을 활용한 양국 간 인적 교류 활성화와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방산, 항공우주 등 전략 산업의 공급망 협력도 주문했다.
국내 재계 사절단은 총회 이후에도 미국에 머물며 주요 인사들과 소통해나갈 계획이다. 미국 의회 내 지한파 모임인 ‘코리아 코커스(Korea Caucus)’ 소속 상·하원 의원들을 비롯해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등 싱크탱크와도 회동한다. 한경협 김봉만 국제본부장은 “한국이 대미(對美) 그린필드(투자국에 생산시설·법인 설립) 최대 투자국(215억달러)이자 대미 투자국 중 일자리 창출 1위 국가라는 점 등을 앞세워 협력 관계를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