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콤한 맛을 내는 식초는 한식에서 필수 ‘K조미료’ 중 하나로 꼽히지만, 국내에서 식초를 자체 생산하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딱 네 곳만이 국내에서 식초를 만든다. 이 중 세 곳이 CJ제일제당·대상·오뚜기 등 대기업들이고, 나머지 한 곳이 중소기업인 경북 영천의 천연식품이다.
식초가 대량 생산하기엔 까다로운 발효 식품이라서 남다른 노하우가 필요하고, 제품 단가가 높지 않아 수익을 내는 것도 쉽진 않다. 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천연식품은 48년 동안 식초를 빚고 판매해왔다. 지난해 매출은 90억원으로 현재 국내 식초 시장에선 점유율 6% 정도를 차지한다. 현재 자체 제품 외에도 샘표·사조·풀무원·롯데웰푸드 등 여러 기업의 식초 제품을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다. 지난 2019년엔 창립자인 임경만(81) 회장이 농림축산식품부 ‘식품 명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본래 임 회장의 첫 직장은 국세청이었다. 세무 공무원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해 8년 이상 공무원으로 일했다. 그러던 중 “너만의 업(業)을 하라”는 부친의 조언을 듣고 시작한 게 식초 개발이었다. 왜 하필 식초였을까. 임 회장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도와 식초를 빚어보기도 했고, 세무 공무원 시절에도 주세(酒稅)를 부과하기 위해 양조 지식을 습득했기 때문에 식초를 직접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술을 빚은 후 발효 과정을 한 번 더 거쳐 알코올이 초산(醋酸)으로 변하면 식초가 된다.
막상 뛰어든 식초 개발은 그러나 실패의 연속이었다. 공무원 시절에 만났던 동료 도움을 받아 일본산(産) 식초 발효기까지 구했지만 정작 식초 발효에 필수적인 초산균(醋酸菌)이 없어 식초를 만들지 못했다고 했다. 균을 자체 배양하기 위해 온갖 실험을 하면서 밤잠을 설쳤지만 쉽게 성공하진 못했다. 수소문 끝에 일본산 식초 균주를 분양받았고, 이후 반년간 연구·개발 과정을 또다시 거듭해야 했다. 그렇게 1977년 첫 제품인 ‘천연양조식초’를 출시했다. 이는 1969년 ‘환만식초’ 후 국내 기업이 개발한 두 번째 식초이기도 하다. 천연식품은 이후 샘표, 이마트 같은 다른 유통 업체들과 OEM 계약을 체결하고 제품을 판매하면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됐다.
중소기업인 덕분에 오히려 그만큼 다양한 식초 제품을 생산, 납품할 수 있었던 것도 천연식품의 경쟁력을 키웠다. 다른 식품 기업들은 양조식초처럼 일반 제품을 대규모로만 판매, 생산하지만, 천연식품의 경우엔 현미식초·사과식초·마늘식초처럼 시장에서 널리 판매되는 주요 제품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거래처 요구에 따라 ‘뽕나무 식초’ 같은 제품을 소량 생산하는 주문도 소화하는 것이다.
자체 브랜드도 직접 개발했다. 보리를 볶은 후 발효시키는 조선시대 식초 제조법을 재현해 2018년 출시한 ‘보리식초’다. 현재 천연식품의 주력 제품으로 꼽힌다. 이 제품으로 임 회장은 2019년 농림축산식품부 ‘식품 명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임 회장은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빚었던 기억을 되살려 만든 제품이 보리식초”라면서 “그 특유의 은은한 향과 맛을 알리고 싶었는데 식품 명인으로도 선정돼 기쁘다”고 했다.
현재 천연식품은 임 회장의 아들 임재성(47) 전무가 대를 이어 맡고 있다. 임 전무는 금융 공기업에 다니다가 2016년부터 천연식품에 합류했다. 3년간의 현장 경험을 거쳤고 현재 생산 물량 확대와 수출 판로 개척에 힘쓰고 있다. 임 전무는 “생산 가능한 물량을 기존 대비 2배로 늘렸고, 거래처도 50% 정도 새로 뚫었다”고 했다.
임 회장 부자는 최근 식초 음료도 새롭게 개발해 일본·미국 등에서 수출을 시작했다. 현재 ‘선드럭’ 등 일본의 유명 드럭스토어가 내놓는 식초 음료 PB 상품을 OEM 방식으로 생산·수출하고 있고, 앞으로 더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수출 물량을 키우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임 전무는 “식초를 활용한 소스, 음료까지 새로운 제품을 계속해서 개발해 해외 시장을 더욱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