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열린 제45회 한·일 경제인회의 공동성명 기자회견에서 한국 측 단장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조석래(89)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9일 오후 6시 38분 서울 종로구 서울대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1966년 동양나이론을 설립한 뒤, 섬유 관련 주요 기술을 국산화하며 한국 섬유 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일본·미국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고인은 일찍부터 ‘우리만의 기술’을 파고들어 효성을 스판덱스 세계 1위, 타이어코드 세계 1위 기업으로 이끌었다.


29일 별세한 효성그룹 조석래 명예회장의 2010년 인터뷰 모습.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현 한경협) 회장을 맡았던 고인은 “10년 후에는 현재 14개인 포천 500대 기업 숫자가 40개로 늘어나도록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었다./한국경제인협회


조 명예 회장은 1935년 경남 함안의 만석꾼 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인 고(故) 조홍제 효성 창업주는 1948년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과 삼성물산을 세워 운영하다, 1962년 독립해 효성물산을 세웠다. 조 명예회장은 일본 와세다대 화학공학과, 미국 일리노이대 화학공학 석사까지 마친 후 박사과정을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사업을 도우라는 부친 뜻에 따라 1966년 귀국했다. 조 명예회장은 부친에게 “앞으로 석유화학 산업이 중요해질 것”이라며 나일론 사업을 제안하고 그해 동양나이론을 설립해 ‘창업 1.5세대’로 평가받는다.

조 명예회장은 공학도답게 기술에 대한 집념이 강했다. 대표적인 일화가 신혼여행이다. 동양나이론 울산 공장을 한창 짓고 있던 1967년, 고 송인상 전 재무장관의 딸인 송광자 여사와 결혼해 신혼여행을 떠나야 했던 그는 여행지로 이탈리아 포를리를 골랐다. 당시 이름도 생소했던 이곳을 택한 것은, 동양나이론 기술진이 포를리에서 생산 기술 연수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 명예회장은 이곳에서 직원들과 밤새 기술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1971년엔 국내 민간 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기술을 알았기에 신사업에 대한 과감한 결단도 가능했다. 그는 1973년 설립한 동양폴리에스터로 폴리에스터 사업까지 성공한 뒤, 1980년대 후반엔 합성섬유를 넘어 합성수지인 폴리프로필렌 사업에 도전했다. 당시 나프타를 분해해 폴리프로필렌을 만드는 기술은 선발 업체들이 갖고 있었는데, 미국 한 회사가 ‘탈수소 공법’이란 신기술을 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 기술을 사들였다. 참모들은 “안 하는 게 좋겠다”고 만류했지만, 조 명예회장은 “안 되는 이유 백 가지보다, 되는 이유 한 가지가 더 중요하다”며 사업을 밀어붙여 큰 성공을 거뒀다. 기술을 이해한 뒤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5월 재계 대표로 청와대를 방문한 조석래(앞줄 가운데) 효성 명예회장.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함께 청와대를 찾았다(조 명예회장부터 시계방향)./효성


기술에 대한 그의 집념 덕분에 효성은 1978년 타이어에 들어가는 필수 섬유 소재인 타이어코드 국산화에 성공했고, 2000년엔 미국 하니웰을 제치고 세계 시장 1위에 올랐다. 1992년엔 세계에서 네 번째로 스판덱스 개발에 성공해, 2010년 미 듀폰의 라이크라를 제치고 세계 시장 1위가 됐다. 2011년에는 ‘꿈의 신소재’라고 하는 고강도 소재인 탄소섬유를 국내 최초 개발했다.

고인은 생전 일본어와 영어로 된 기술 전문 잡지를 차에 두고 수시로 읽었고, 임원 회의 때도 가져가 외국어가 부족한 임원들에게 직접 설명하며 가르쳤다고 한다. 2013년 일리노이공대는 고인에게 한국인 최초 명예 박사 학위를 주었다. 현장에서 쌓은 그의 공학 실력을 인정한 것이다.

고인은 현장 세부 사항까지 챙기는 꼼꼼한 경영자였다. 1982년부터 2017년까지 35년간 그룹 회장을 맡은 그는 생전에 팀장이나 과장급 직원에게 직접 전화해 ‘날것 그대로인’ 정보를 듣고 경영 판단을 했다. 조 명예회장은 작년 말까지도 회사 경영 상황을 보고받는 등 마지막까지 회사 일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7월 당시 중국 저장(浙江)성 당서기로 처음 한국을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는 조석래(오른쪽) 효성 명예회장. 효성은 1999년 저장성에 첫 해외 생산 기지인 스판덱스 공장을 지었다./효성


조 명예회장은 경영인 역할뿐 아니라 일본어·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민간 외교관 역할도 했다. 1991~2000년 한미경제협회 부회장을 맡았고 2000~2009년 한미재계회의 위원장까지 총 19년간 한미 경제 교류에 이바지했다. 2005~2014년엔 한일경제협회장, 2007~2011년 전경련(현 한경협) 회장을 지냈다.

2010년 담낭암 말기 판정을 받아 절제 수술을 받은 조 명예회장은 2014년 초엔 전립선암으로 치료를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내 송광자 여사, 장남 조현준 효성 회장, 차남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 삼남 조현상 효성 부회장이 있다. 발인은 다음 달 2일 오전 7시,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