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지만, 대다수 중소기업은 대비가 ‘전무’한 상태다. 사진은 2022년 1월 26일 인천국제공항 4단계 건설 현장에 안전모와 장갑이 놓여 있는 모습./오종찬 기자

부산의 한 제조업체는 오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시행을 앞두고 매일 헤드헌팅 회사에 “사람 구했느냐”고 문의하고 있다. 법 시행이 일주일도 안 남은 상황에서 안전관리 담당자를 뽑고 싶은데 지원자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작년 초 안전 담당자를 지정해 교육을 해놓았더니 몇 달 만에 사표 내고 대기업으로 이직하더라”며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건 우리나라 중소기업 현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말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지만, 대다수 중소기업은 대비가 ‘전무’한 상태다. 법이 예정대로 시행되면 영향을 받는 사업장이 83만곳에 달하는데, 90%가 넘는 곳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법 시행 유예를 호소하고 있다. 중소기업계는 “법 적용이 유예되지 않으면 대다수 중소기업 경영자가 범법자로 내몰릴 상황이고, 폐업하는 업체가 속출해 산업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픽=김현국

◇50인 미만 기업 94%가 “준비 안 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됐지만, 50인 미만(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중소사업장은 2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중대재해 발생 때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직원 20~49명 규모 중소기업은 안전보건관리 담당자를 최소 1명 이상 둬야 한다. 그러나 영세 중소기업들은 “경기 불황에 이자조차 못 내는데 막무가내로 법을 적용하는 건 사실상 문 닫으라는 이야기” “안전사고 한 번에 망하는 사업장이 줄줄이 나올 것”이라고 호소한다. 실제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작년 11월 50인 미만 1053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94%가 법에 대한 준비가 완료되지 않았다고 했다. 2곳 중 1곳은 안전보건 업무를 수행할 인력조차 배치하지 못한 상태였다.

안전 전문가를 채용하려 해도 최소 5000만~6000만원의 인건비를 추가 부담하는 게 쉽지 않고, 안전관리자 채용이 의무인 대기업에 밀려 구인난에 허덕이는 상황이다. 안전 인력을 배치한 중소기업도 전문 담당자가 아니라 사업주·현장소장(57%), 인사·총무 담당자(12%), 생산관리자(3%) 등이 안전 관리 업무까지 떠맡은 경우가 많았다. 박평재 한국표면처리협동조합 이사장은 “뿌리 산업 대부분이 매출 수십억원 수준으로 대표가 생산은 물론 영업, 재무, 관리까지 다 관여하는데 안전사고로 대표가 구속되면 회사가 아예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고 예방을 위해 제조 장비나 시설을 최신식으로 바꾸려고 해도 비용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경기도의 한 자동차 부품 업체는 근로자가 작업 중 사고 위험이 큰 공정을 자동화하는 설비를 도입하고 싶지만, 비용이 최소 5억원 이상이라 망설이고 있다. 이 업체 대표는 “한 해 영업이익이 5000만원도 안 되는 상황에서 5억원치 투자를 결정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재작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제조 중소기업 평균 매출액은 42억9000만원이다.

◇경제계 “2년 유예” 한목소리

경제단체들은 그동안 수차례 중소기업의 현실을 반영해 법 적용을 추가 유예해달라고 주장해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작년에만 성명문·토론회·간담회를 통해 10차례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시행을 철회해달라는 목소리를 냈다. 올해 초에는 한국경제인협회·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와 함께 법 유예를 촉구하는 공동성명도 발표했다. 당시 경제 6단체는 “국회는 50인 미만 사업장의 절박한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중대재해법 유예 법안을 하루빨리 상정해 논의에 나서주길 간곡히 호소한다”고 했다.

개별 단체들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동차 관련 11개 단체로 구성된 자동차산업연합회는 21일 “우리나라 자동차 부품 제조 기업 1만여 개 중 종업원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이 94%를 웃돈다”며 법 적용 유예를 호소했다. 연합회는 “형사처벌에 따른 폐업 증가와 근로자 실직 등 부작용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