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最古) 공기업 대한석탄공사 사장이 사라졌다. 대한석탄공사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1월 설립된 73년 역사의 공기업이다. 지난해 말 기준 자산은 9659억원, 부채는 2조3917억원으로 부채가 자산보다 1조5000억원 가까이 많은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지난해 영업적자는 916억원으로 한 해 거둔 매출(730억원)보다 많았다. 원경환 석탄공사 사장은 문재인 정부 말기에 잇따랐던 ‘알박기’ 인사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원 사장은 정권이 바뀐 뒤에도 1년 반이 넘게 자리를 지켰지만, 최근 돌연 사표를 낸 데 이어 수리가 될 수 없는 상태임을 알고서도 ‘사표를 냈다’며 출근을 중단했다.
26일 정부와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원경환 석탄공사 사장은 지난 22일 오전 직원들에게 “이제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고, 짐을 챙겨 사장실을 떠났다. 2021년 11월 취임한 지 2년 만이다. 임기는 아직 1년 가까이 남았지만 이날도 출근하지 않았다.
강원 평창 출신으로 서울경찰청장을 지낸 에너지 비전문가인 원 사장은 문 정부 임기가 6개월 정도 남았을 때 석탄공사 사장에 임명됐다.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지만, 원 사장은 법이 보장한 임기(3년)가 남았다는 이유로 사장직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지난해 발표한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석탄공사는 D(미흡) 등급을 받고, 올해도 기관장 경고를 받았지만 자리를 지켰다.
원 사장이 갑자기 출근을 하지 않으면서 정가를 중심으로 내년 총선 출마설이 유력하게 돈다. 앞서 2020년 4월 치러진 21대 총선에 강원 홍천·횡성·영월·평창에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한 뒤 석탄공사 사장으로 왔다. 그런데 이번엔 오는 30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여는 사실이 확인됐다. 지역 관계자는 “원 사장은 그동안 이전 출마지였던 강원도를 떠나 우상호 민주당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서울 서대문갑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원 사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기소된 ‘공기업 사장 1호’인 신분이기도 하다. 지난해 9월 일어난 태백 장성광업소 근로자 매몰 사망 사고 관련이다. 현행 규정상 1심 판결이 날 때까지 사표 수리는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원 사장의 일방적인 사표 후 ‘무단결근’으로 인해 대행체제도 어려워 가뜩이나 경영난에 빠진 석탄공사로서는 상당 기간 경영 공백이 불가피하게 됐다.
이번 원 사장의 사표 제출과 잠적이 총선 출마 시간표에 맞췄다는 풀이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공직자 사퇴 시한을 사직서 수리 여부와 상관없이 제출 시점으로 본다는 법원 판례가 있다”며 “원 사장이 이를 감안해 사표를 냈고, 출근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원 사장은 본지의 해명 요청에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말한 뒤, 이후 거듭되는 전화에도 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