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국내 발전소에서 ‘이름도 모르는 지방 중소기업’이라며 퇴짜를 맞기도 했지만, 지금은 일본 도시바, 미쓰비시 중공업, 미국 GE에도 수출합니다.”
부산 사하구 신평산업단지에 있는 발전용 터빈 부품 제작 회사 ‘터보파워텍’. 공장 한편에 있는 기계 부품들 앞에서 정형호(79)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1979년 창업해 올해 설립 44년을 맞은 터보파워텍은 부산 지역에서 ‘역수출 신화’를 쓴 강소기업으로 통한다. 100% 수입에 의존하던 발전 터빈 핵심 부품인 ‘실링(Seal Ring)’을 국산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글로벌 기업에 수출까지 하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 매출 292억원, 영업이익 약 28억원, 영업이익률 9.5%로 탄탄한 실적을 올렸다. 2020년에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소재·부품·장비 강소기업 100′에도 선정됐다.
황해도 출신 피란민인 정 대표는 1972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국내 첫 원전인 고리 제1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 정 대표는 “그땐 미국 원전 업체 웨스팅하우스 기술을 전부 가져왔고 한국 직원들은 시키는 대로 조립하고 짓고 하는 게 전부였다”며 “그때 기술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했다.
사업을 시작한 것은 1979년. 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일하다, 지인이 운영하는 공장 귀퉁이 한편을 빌려 작업 선반 몇 개 놓고 주물 공장을 열었다. 그는 “당시 조선소에 납품되는 소재의 불량이 너무 많았다”며 “완제품 산업이 발전하려면 소재부터 제대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창업했다”고 했다.
1980년대 중반 정 대표는 주요 사업 품목을 발전 터빈용 실링으로 바꿨다. 실링은 터빈의 가스와 수증기 누설을 막아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핵심 부품이다. 당시 산업화로 국내 발전소 수요는 급증하고 있는데, 터빈 실링은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정 대표는 “발전소는 실링 불량으로 터빈이 서면 바로 교체해야 하기 때문에 비싼 외화를 들여 몇 년 후에 쓸지도 모르는 예비 부품을 쌓아두고 있었다”며 “기술 국산화를 못 해 생기는 낭비였다”고 했다.
1986년 국내 최초로 수직 원심주조(원심력을 이용해 링 형상 소재를 제조하는 방법) 기술을 도입했다. 정 대표가 당시 일본에서 1년에 두 차례씩 열렸던 ‘세계 주물 대회’에 참가해 공장을 견학하고 기술 흐름을 익혀온 덕분이다.
1989년 실링 개발에 성공하고, 터빈 완제품 기업인 미국 GE사의 승인까지 받았다. 하지만 시장을 뚫는 건 쉽지 않았다. 제품력은 자신 있었지만, 정작 국내 발전사들은 중소기업 제품이라는 이유로 계약을 꺼렸다. 한번 사용해 본 일부 발전사는 재주문을 했지만, 제한된 국내 수요만으로 회사를 운영하기 쉽지 않았다. 정 대표는 “직원들이 피땀 흘려 쌓은 기술을 사장할 수 없어 적극적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했다”고 말했다. 처음 문을 두드린 곳이 일본 도시바였다. 최고 제조 기술을 보유한 도시바를 뚫으면, 다른 수요처도 확보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도시바 직원들이 수차례 터보파워텍 부산 공장을 찾아 제품을 검토한 뒤 납품을 허가했다. 이후 일본 히타치, 독일 지멘스까지 시장이 넓어졌다. 정 대표는 “우리 제품에 퇴짜를 놓았던 국내 한 발전소가 해외에서 부품을 구매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가 해외에 수출한 제품이었던 적도 있었다”며 웃었다.
터보파워텍은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GE 에너지, 미쓰비시 중공업 등 글로벌 기업에 생산품의 70%를 수출하고 있다. 보유 특허만 50여건에 이르고, 2018년에는 자체 연구 설비를 확대해 국제 공인 시험 기관 인정(KOLAS)도 획득했다. 정 대표는 “터빈 부품뿐 아니라 다른 기계 부품도 제작·가공해달라는 요청이 많지만 거절했다”며 “한 분야에 집중해야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 터빈 부품의 ‘히든 챔피언’으로 장수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