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공기업인 한국전력의 빚이 사상 처음으로 200조원을 돌파했다. 올해도 수조원대 손실이 예상되면서 빚으로 빚을 돌려막는 것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해 2분기부터 1년여간 전기요금이 40%가량 올랐지만, ‘사후약방문’ 식으로 이뤄지면서 빚은 쌓이고 이자 부담만 늘렸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2일 한전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한전의 총부채는 201조4000억원(연결기준)으로 사상 처음으로 200조원을 넘겼다. 지난해 말 192조8000억원에서 8조6000억원가량 늘어난 규모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는 가운데 요금 인상 속도가 이에 미치지 못하며 2021년 이후 올 상반기까지 누적 영업손실이 47조원을 웃돈 탓으로 풀이된다.
증권사들의 전망치를 봐도 연말까지 큰 폭으로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한전은 전력 성수기인 올 3분기에는 1조7000억원 흑자를 내겠지만, 다시 4분기에는 약 4500억원 적자가 예상된다. 2분기 요금 인상이 진통 끝에 분기 중반인 5월 중순에야 kWh(킬로와트시)당 8원(5.3%) 인상에 그치고, 3분기에는 동결하면서 2분기에는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3분기 흑자도 크게 줄었다는 진단이 나온다.
최근 국제 유가가 산유국 연합체인 오펙 플러스(OPEC+)의 감산 현실화와 함께 배럴당 80달러를 웃돌고, 호주 LNG(액화천연가스) 생산공장 파업 임박 소식에 천연가스 현물가격이 40%가량 폭등하자 실적은 전망보다 더 부진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전기요금 추가 인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5배(최대 6배)까지 발행할 수 있는 한전의 회사채 발행한도도 막힐 가능성 크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시장 전망과 같이 올해 영업손실이 7조원에 이른다면 자본금과 적립금 합은 14조원으로 줄어들며 회사채 발행 한도는 70조원 수준에 그치게 된다. 이미 상반기에 적자가 쌓이며 반기 재무제표로 계산했을 때 발행한도는 74조원으로 현재 잔액인 78조원보다 쪼그라든 상태다.
전기요금이 작년 2분기부터 매 분기 올랐지만, 출발이 늦은 상황에서 인상 폭마저 제한되면서 적자는 쌓였고, 이자 부담만 늘면서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한전이 하루에 이자로만 내는 돈은 70억원 수준으로 한 달이면 2000억원에 이른다. 재무구조 개선이 늦어지면서 빚으로 빚을 돌려막다 보니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국회는 지난해 말 한 차례 부결 끝에 애초 2배였던 한전채 발행 한도를 확대했지만, 올해 말에도 마치 데자뷔 같은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이미 지난해 확대를 한 데다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야당이 법 통과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며 “부채가 200조원을 웃도는 현실에서 회사채 발행한도를 늘리는 것은 자본잠식을 용인하는 것이 된다는 점에서도 전망은 밝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