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 기업들의 실적이 올해 1분기 반 토막 난 데 이어, 2분기에도 연이어 반 토막이 났다. 15일 CEO스코어가 매출 500대 기업 중 전날까지 반기 보고서를 낸 305사의 실적을 집계한 결과, 2분기 총 영업이익은 23조원으로 전년 동기(52조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지난 1분기(25조원)에도 전년 동기(50조원)의 반 토막이었다.

본지가 업종별로 분석한 결과, 부진의 핵심으로 거론됐던 반도체만 망가진 게 아니었다. 우리 주력 산업인 석유화학·정유·철강·건설·제약·유통 등 대다수 업종이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었다. 특히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석유화학·철강 산업은 부진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나마 미국 등의 영향을 받는 자동차·조선·배터리 산업이 선방했지만 전체 실적을 견인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픽=박상훈

◇반도체만 문제? 석유화학·정유·철강 등도 불황

상장사 중 14일까지 반기 보고서를 제출한 305사의 올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9조원 감소했는데, 이 중 20조5000억원은 삼성전자(13조4000억원)·SK하이닉스(7조1000억원)의 이익이 줄었기 때문이다. 반도체 양대 시장인 중국·미국의 수요 부진이 지속되며 업계의 감산에도 D램 가격이 하락한 영향이 컸다.

여기에 작년 상반기까지 선방했던 국내 핵심 산업인 석유화학·정유, 해운, 철강 등의 이익 상황까지 심각하다. 올 2분기 석유화학·정유 업종에서만 10조3238억원, 해운·운송에서 3조2239억원, 철강에서 8978억원이 줄었다. 대표적 화학 업체인 롯데케미칼은 770억원, LG화학 석화 부문은 127억원 적자를 냈다.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소비 감소)으로 수요는 감소하는데,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은 더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작년 유가 상승으로 역대급 실적을 냈던 GS칼텍스와 SK에너지는 올 2분기 유가 하락으로 정제 마진이 급감, 2조원대 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지난해 코로나 엔데믹 직후, 공급 부족에 따른 해운 운임 급등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냈던 HMM도 올 2분기엔 수요가 한순간에 사라지면서 이익이 95%(2조7769억원) 날아갔다.

이 밖에도 건설(-5560억원), 제약(-3545억원), 카드·캐피탈(-2117억원), 식음료(-1932억원), 상사(-1771억원), 생활용품(-1441억원), 서비스(-1402억원), 증권(-892억원), 유통(-64억원)까지 대다수 업종의 이익이 줄었다.

그나마 이익을 늘린 곳은 중국 외 시장을 겨냥한 자동차·부품과 조선·기계·설비, 배터리 업종이다. 자동차·부품 업종은 미국·유럽 시장에서 판매를 늘린 현대차·기아의 사상 최대 실적 효과로 전년 동기 대비 이익이 3조3623억원 늘었다. 최근 수퍼사이클에 접어든 선박 시장에서 한국 업체들이 유럽 선사에서 친환경 선박을 대거 수주하며 조선·기계·설비(1조3011억원) 업종 이익도 늘었다. 미국 전기차 시장을 공략해 집중 투자한 배터리·에너지(2007억원) 분야도 성장했다. 개별 기업으로는 현대차·기아(2조4271억원), 삼성중공업(3147억원), LG에너지솔루션(2650억원), 현대모비스(2604억원) 등이 수조, 수천억원씩 이익이 늘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반 토막 실적’에서 벗어나기에 역부족이었다.

◇'차이나 쇼크’ 우려로 하반기 반등도 어려워

최근 중국의 대형 부동산 기업들이 부도 위기에 처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차이나 쇼크’ 우려가 커지고 있어 하반기 반등도 쉽지 않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 매출(212조원)에서 중국(59조원)의 비율이 28%로 미국(58조원)과 비슷하다. 그런데 중국 시장이 회복은커녕 더 악화되는 조짐을 보이자 증권가는 ‘반도체 3분기 회복설’을 ‘4분기 회복설’로, 심지어 ‘내년 1분기 회복설’로 보는 보고서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감산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재고가 6월 말 기준, 50조원을 넘었다(삼성 33조6896억원, SK 16조4202억원). 작년 말 대비 각각 15.9%, 4.8% 늘어난 것으로 6개월 만에 5조원 이상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중국 모바일 수요 비중이 커 샤오미·오포·레노버 등이 사줘야 하는데, 중국 경기가 죽으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중국 시장 의존도가 40%에 달하는 석유화학 업종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문지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경제통상팀장은 “중국 시장이 회복된다 해도, 중국 석유화학업계의 자급력이 높아지고 있어 중국만 바라보는 전략은 유효 기간이 끝났다”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중국에서 레버리지로 급등했던 부동산 거품이 정부의 대출 규제와 탈중국 흐름으로 꺼지고 있는데,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처럼 장기화될 가능성은 낮다”며 “최근 중국이 유커(관광객)를 한국 등에 보내기로 하고 외국 기업 유치책도 내놓으며 변화 조짐이 있어 미중 갈등 전개 상황에 따라 경기가 개선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