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이 22일 류진 풍산그룹 회장을 새 회장에 추대하기로 하면서, 전경련 혁신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전경련은 과거 명실상부 ‘재계의 맏형’ 역할을 하며, 한국 경제 성장과 궤를 같이해 왔다. 하지만 2016년 당시 미르·K재단 출연금의 ‘수금책’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위상이 급격히 추락했다. 4대 그룹이 탈퇴해 예산이 줄면서 대규모 구조 조정을 해야 했고, 지난 정부에선 거의 모든 국제 행사에서 ‘패싱’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류진 회장 취임으로 전경련이 과거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류진 회장, 탁월한 국제 감각 갖춰”
류진 회장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재계에선 탁월한 국제 감각과 균형 감각을 지닌 기업인으로 평가받는다. 서울대 영문학과, 미 다트머스대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아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췄고, 일본어도 능통하다. 서애 류성룡 선생의 13대손이다. 외교관 출신인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차녀 노혜경씨가 아내이다.
류 회장은 미국 민주·공화당을 넘나 드는 인맥을 보유해 ‘민간 외교관’이란 평가를 받는다. 2003년 4월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을 국내에 초청하는 역할을 주도했다. 2002년 말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 당시, 부시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과의 뜻을 담은 전화를 한 것도 류 회장 역할 때문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미국 하원 의원단과 한국 재계의 만남을 주선했고, 2015년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아들 부시 대통령의 골프 회동을 주선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임기 동안 기업인으로 유일하게 류 회장만 대외 특사단에 포함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갈수록 중요해지는 한미 관계에서 류 회장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크다. 최근 미국이 IRA(인플레감축법)와 ‘반도체법’을 시행하며 대중국 규제에 강하게 동참할 것을 요구하는 등 한국 기업들을 난처하게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류 회장이 이런 한국 기업들의 입장을 더 잘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류 회장은 애주가는 아니지만 활발한 사교 활동을 하면서 ‘와인 애호가’로도 알려져 있다.
◇22일 4대 그룹 재가입도 진행 중… 전경련 혁신은 과제
22일 총회에서 4대 그룹의 재가입까지 성사되면, 전경련의 새 출발이 더 큰 힘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전경련은 지난 5월 ‘싱크탱크형 경제 단체’로 거듭나고, 분야별 위원회를 운영해 사무국 중심의 독단적 의사 결정에서 벗어나겠다는 혁신 초안을 내놨지만, 4대 그룹 등은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류 회장이 기존 혁신안을 계승하기보다 새로운 안을 추진해 정경 유착 이미지를 씻어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경련은 22일까지 삼성·SK·현대차·LG그룹에 재가입 여부를 결정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4대 그룹은 전경련 산하 연구 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 회원사로 남아있던 계열사들이 새로 출범하는 ‘한경협’에 흡수될 때, 회원 자격을 유지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4대 그룹이 ‘싱크탱크’ 역할을 하겠다는 전경련의 혁신 취지에 일부 공감하나, 여전히 반대 의견도 많다”며 “이사회 등 내부 절차를 밟아 최종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2월 23일 취임한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은 취임 당시 약속한 6개월의 임기를 마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