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6단체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주제는 ‘대법원 판결’에 대한 비판이었다. 지난 15일 대법원은 ‘불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노조원 개개인의 가담 정도에 따라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경제계는 판결 직후 “민주당의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 입법 강행에 보조를 맞춘 것 같은 대법원 판결”이란 반발 성명을 낸 바 있다. 대법원은 판결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19일 이례적으로 추가 설명 자료를 내고 “기업의 입증 책임이 무거워지지 않고 기존 판례와 달라지는 게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제 6단체는 이날 “꼼수 판결” “무법천지” 같은 높은 수위의 표현까지 써가며 대법원 판결에 날을 세웠다. 한 재계 인사는 “법원에 여러 송사가 걸려 있어 눈치를 봐야 하는 기업들이 대법원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라며 “그만큼 이번 판결에 대한 경제계 충격이 크다는 의미인 동시에 앞으로 노란봉투법이 국회에서 강행 처리될 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등을 염두에 둔 입법 저지 노력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제 단체 “대법원 꼼수 판결”
지난 15일 대법원은 현대차가 전국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노조원 4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현대차에 승소 판결을 내린 항소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사건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가 2010년 11~12월 울산공장 1·2라인을 점거하면서 278시간 동안 생산이 중단되자 현대차가 노조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것이다.
대법원은 “노조와 개별 조합원의 손해배상 책임의 범위를 동일하게 보면 헌법상 근로자에게 보장된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고 손해의 공평, 타당한 분담이라는 이념에도 어긋난다”면서 “개별 조합원에 대해서는 노조에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책임을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경제 6단체는 “공동 불법행위 손해에 대해서는 가담자의 책임 비율을 개별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도 대법원은 불법 파업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개별적으로 손해를 평가할 수 있다는 새로운 판례법을 창조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복면을 쓰거나 CCTV를 가리고 기물을 망가뜨리거나 사업장을 점거하는 우리 현실에서 조합원 개개인의 손해에 대한 기여도를 개별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사용자의 손배 청구를 사실상 봉쇄하는 결과로 이어져 산업 현장은 무법천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의 ‘친(親)노조’ 판결에 불만 폭발
경제 단체의 이날 공동성명을 두고 김명수 대법원장 퇴임 전 ‘알박기 판결’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경제계 주요 현안이었던 통상 임금 소송에서 2021년 대법원이 근로자 측 손을 들어줬을 때도 경제 단체의 공동 비판 성명은 없었다.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는 취지에서 단체 행동은 피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날 경제 6단체는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 정기 상여금의 통상 임금 인정, 전교조의 노조 인정 등 과거보다 노동 편향적 판결이 많아져 기업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또 “노조법 개정안은 이번 판결을 넘어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 원천적으로 연대책임을 부정한다”며 “통과될 경우 법체계 근간을 무너뜨리고, 노사 관계를 파탄 내는 판결이 속출해 기업과 경제는 속절없이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