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압기 제조가 주력인 HD현대일렉트릭은 2019년 말 의외의 사장 인사를 발표했다. 조석(66) 사장이었다. 조 사장은 행시 25회 출신으로 지식경제부 2차관(2011~2013)과 한수원 사장(2013~2016)을 지냈다. 그런 그가 당시 2년 연속 1000억원대 적자를 내던 민간 기업 사장으로 영입된 것이다.
조 사장은 이달 초 HD현대 판교 신사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괜히 적자 기업 떠맡았다가 불명예만 안고 끝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한테도 큰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꽤 성공적이었다. 사장 취임 직후인 2020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지난해엔 사상 최대 영업이익(1330억원)을 냈다. 올 1분기에도 463억원으로 분기 최대 이익을 달성했다. 증권가에선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사상 최대 실적”이라고 했다. 회사 안팎에서는 “공무원 출신 사장이 다 죽어가던 회사를 살렸다”는 말도 나왔다.
◇'DNA 혁신’ 가동… 1000가지 뜯어고쳐
조 사장은 사장 제안에 대해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저가로 수주했던 계약을 과감히 파기했다. 전기 압력을 저압 또는 고압으로 바꿔주는 변압기는 발전소·공장·송전탑 등 각종 인프라에 필수품이다. 2018~2019년 변압기 시장은 공급과잉으로 경쟁이 치열했고, 회사 영업팀은 실적 채우기에 급급해 저가 수주에 나섰다. 조 사장은 직원들에게 “실적이 나빠도 괜찮으니 수익 나는 계약만 하자”고 했다.
조 사장은 또 취임 바로 다음 날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를 통해 ‘DNA 혁신 프로그램’을 가동시켰다. 조직 문화부터 설계·구매·생산·영업·자금까지 전 분야 체질 개선을 목표로 2년간 1000개 넘는 과제를 수행하는 프로젝트다.
“경쟁사인 GE와 지멘스 제품을 뜯어보고 어떤 소재, 어떤 부품을 썼는지 철저히 분석했어요. 경쟁사보다 ‘더 좋은 제품을 더 싸게, 더 빨리’ 제공하는 것이 목표였지요.”
제품 원가와 성능 경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고객사가 원하는 납기를 맞추는 데 집중했다. 코로나 때는 글로벌 경쟁사들이 공장을 폐쇄했지만 HD현대는 납기를 철저히 맞추면서 고객 신뢰를 쌓았다.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투자가 늘고, 미국·중동 등 인프라 투자가 확대된 것도 기회가 됐다. 조 사장은 “우리가 1~2년 체력 단련을 했는데, 2021년 하반기부터 큰 대회가 열린 셈”이라며 “한국의 빠른 일 처리를 고객사들이 좋아해 앞으로 몇 년간은 실적이 계속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석다방’으로 MZ 직원들에게도 인기
조 사장은 두어 달에 한번은 오전 7시 30분쯤 앞치마를 두르고 국내외 공장과 사옥을 찾아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커피와 빵을 전달한다. 조 사장 이름을 딴 ‘석다방’ 이벤트다. 또 MZ세대 직원들이 ‘멘토’(상담해주는 측)가 되고, 상무급 이상 임원이 ‘멘티’(상담받는 측)가 되는 ‘역멘토링’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회사 주요 경영진 회의에 일반 직원을 10명씩 돌아가면서 참관시키고 있다. 조 사장은 “회사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의사 결정이 어떻게 되는지 이해하면 일선 직원들의 사기가 높아진다”며 “한 번은 어떤 직원이 ‘임원들이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줄 몰랐다’고 해 모두 웃음이 터졌다”고 했다.
그는 “(4000여) 직원이 마지못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오는 회사가 아니라, 즐거워서 출근하고 싶은 회사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