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전 7시 30분 서울 서초구 태봉로 KT연구개발센터. 이곳에서 오전 9시 예정된 KT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50여 명의 주주가 미리부터 줄을 서서 대기 중이었다. 자신을 일반 소액주주라고 밝힌 50대 남성은 “경영진이 이제라도 회사를 잘 추슬러서 주가 하락을 막았으면 좋겠다. 응원하러 왔다”고 했다. 반면 옆에선 KT전국민주동지회 등 강성 노조원들이 모여 “현 경영진도 전원 물러나라”고 외치고 있었다.

당초 이번 주총은 연임 도전을 포기한 구현모 KT 대표를 이을 ‘차기 CEO(최고경영자) 선출’ 주총으로 초미의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이날 처리된 안건은 배당 재무제표 승인, 정관 변경 등 4건이다. 처음 공시한 안건 8건 중 절반이 취소되면서 CEO 선출이나 사외이사 연임 같은 핵심 안건이 모두 빠진 사실상 ‘배당금 결정’ 주총에 불과했다. 이 같은 결과는 경선을 통해 이사회로부터 차기 CEO 내정을 받았던 윤경림 후보가 지난 27일 전격 사퇴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여기에 여권이 ‘전(前) 정부 인사’로 분류해온 사외이사 2명이 지난 28일 사퇴하고, ‘1년 연임’ 대상에 오른 사외이사 3명(강충구·여은정·표현명)도 이날 오전 주총 전 동반 사퇴했다. 차기 CEO 선임은커녕 이사 정원 11명 중 1명만 남아 이사회가 붕괴 수준에 처했다. KT는 이사회 의결 정족수가 최소 3명이 필요한 만큼 이날 동반 사퇴한 사외이사 3명에게 후임 이사 선정 때까지 대행 역할을 맡기는 고육지책도 내놨지만,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시작된 주총은 김빠진 맥주 같은 분위기였다.

◇줄사퇴에 안건 절반 취소

주총장 안에 사측 주요 인사는 ‘CEO 공백’ 사태로 대표 직무대행을 맡게 된 박종욱 사장(경영기획부문장)과 주총 직전 사외이사 사퇴 입장을 밝힌 여은정 감사위원장 정도만 볼 수 있었다. 전체 사외이사 8명 중 유일하게 사퇴하지 않은 사외이사 1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날 주총은 44분 만에 끝났지만, 시작부터 고성이 오가며 혼란스러웠다. 마이크를 잡은 박종욱 대행은 “회사에 발생한 위기 상황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새 CEO 선임에 5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최대한 단축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속담처럼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한번 도약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일부 주주는 “(박 대행도) 물러나는 게 정상 경영의 길” “다들 이번 사태 공범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행이 회의를 진행하는 동안 주총장 내에선 박수와 고함, 비속어가 뒤섞여 나왔다. 한 주주는 “시끄러워서 보고를 제대로 들을 수 없다”고 항의하기도 했다. 주주 자격으로 참석한 김미영 KT 새노조 위원장은 “완전 민영화가 된 KT를 두고 정치권에서 ‘감 내놔라 대추 내놔라’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이사회 내) ‘이권 카르텔’을 걷어내는 데 ‘낙하산’이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자신을 네이버 카페 ‘KT주주모임’ 운영자라고 밝힌 주주는 “회사 측은 구 대표의 연임 포기와 윤 후보가 물러나게 된 상황을 정확하고 당당하게 밝혀달라” “정치권 인사들이 KT 경영에 참여하는 걸 방지하는 정관을 앞으로 있을 주총에서 반영해달라”고 요구했다.

◇5개월 내 새 CEO 선출이 목표

일단 KT는 박종욱 대행을 중심으로 한 비상경영위원회에서 회사를 운영하며 새 CEO 선출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먼저 여권이 계속 지적해온 지배구조 문제를 개선하고 공석이 된 7명의 사외이사 자리부터 채우기로 했다. KT 관계자는 “새 CEO 후보를 최종 결정하는 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의 주축이 바로 사외이사들인 만큼, 이것부터 새롭게 세팅하는 게 현재로선 가장 중요하다”며 “결국 사외이사 선임을 위한 임시 주총을 먼저 하고, 이들과 CEO 공모를 진행한 뒤 다시 CEO 선임을 위한 임시 주총을 또 열게 될 것”이라고 했다. KT는 이 과정에 5개월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KT비상경영위원회는 주주 추천 등을 받은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뉴거버넌스 구축 TF(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지배 구조 문제 개선책을 찾기로 했다. 여기서 제안한 개선안을 바탕으로 사외이사 선임을 추진하는 한편, 새로 선임된 사외이사들을 중심으로 새 CEO 후보 공모도 진행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