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새 수장을 맞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대대적인 개혁 작업에 시동을 걸었다. 전경련은 23일 정기총회를 열고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을 미래발전위원장 겸 회장 직무대행으로 추대했다. 또 허태수 GS 회장, 류진 풍산 회장, 조현준 효성 회장을 전경련 부회장으로 선임했다.
전경련은 이와 함께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을 국제적인 수준의 싱크탱크로 육성하는 것을 비롯한 중장기 발전 방안과 뉴웨이 구상을 발표했다. 과감한 혁신 작업으로 국민들로부터 다시 사랑받는 경제계 대표 단체가 되겠다는 것이다.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이 6개월 안에 내부 혁신과 4대 그룹 재가입, 차기 전경련 회장 추대라는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재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경연을 글로벌 싱크탱크로
전경련 미래발전위는 이날 총회에서 국민 소통, 미래 선도, 글로벌 도약이라는 뉴웨이 구상을 보고했다. 국민 소통의 첫 프로젝트인 ‘한국판 버핏과의 점심 식사’는 4월 중 개최하기로 했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30명을 선발해 전경련 회장단인 대기업 회장, 전문 경영인, 성공한 스타트업 창업자 등 3인과 점심 식사를 하는 형식이다. 또 대·중소기업 상생을 위해 전경련에 대·중소상생위원회를 설립하고 중소기업 경영자문사업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도 구체화해나갈 계획이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전경련 회관에 경제인 명예의 전당을 조성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전경련은 미래 선도를 위한 실천 방안으로 산하 경제 연구 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을 국제적 수준의 싱크탱크로 육성하기로 했다. 한경연 기관 명칭·성격·구성을 모두 뜯어고쳐 보고서 발간 위주의 연구 기관이 아닌 지식 네트워크의 허브로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또 경제 교육, 인재 양성도 중점 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김 직무대행은 “현재 한경연 규모가 상당히 축소돼 있어, 이를 다시 큰 연구 조직으로 키우는 것은 당장에는 어려운 일”이라며 “기존의 학술·정책 네트워크와 외부의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해 각종 정책이나 제언을 하는 코디네이터(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재편하겠다”고 했다.
전경련 회장단을 비롯한 주요 그룹 회장들로 구성된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설립도 검토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글로벌 이슈 발생 시 경제계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하거나 실행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전경련은 회장단이 전면에 나서는 위원회 중심 분권형 책임 경영을 강화하고, 윤리 지침을 제정해 사무국 체질 개선에도 나서기로 했다.
◇4대 그룹 재가입, 차기 회장 추대 등 난제 산적
김 직무대행은 6개월 동안 이 같은 개혁 작업과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 재가입, 차기 회장 선출이라는 숙제를 풀어야 한다. 당장 전경련 회비의 75%를 차지하는 4대 그룹을 재가입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전경련은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 단체였으나, 지난 2016년 불거진 국정 농단 사태로 4대 그룹이 모두 탈퇴했다. 김 직무대행은 “전경련의 역할과 방향을 제대로 정립해 국민들로부터 지지받는 전경련이 되도록 하겠다”며 “그러면 4대 그룹뿐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인이면 누구나 저 단체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김 직무대행이 윤석열 대통령 캠프에서 활동한 정치인이기 때문에 4대 그룹 재가입이 더 힘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부 경제 정책 방향이 중소·벤처기업 중심으로 전환된 상황에서 전경련이 과거와 같은 위상을 되찾기 힘들 것이라는 근본적인 의구심도 있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전경련에 재가입하면 정부의 이런 저런 요구 사항을 들어주느라 기업 부담만 커지고, 자칫하면 또다시 정경 유착 시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서 “상당히 부담스러운 게 현실”이라고 했다. 김 직무대행은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위해선 정경 유착 고리를 끊는 것이 기본”이라며 “경제 발전이라는 가치를 위한 협력 관계로 정부와의 관계를 재설정할 것”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