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요 대기업 CEO(최고경영자)들은 “올해 주총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들 것 같다”며 바짝 긴장하고 있다. 갈수록 힘이 세지는 행동주의 펀드뿐 아니라 주총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소액 주주들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대응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행동주의펀드와 소액주주들은 배당 확대에서부터 이사·감사 선임, 경영진 교체, 회사 분할까지 다양한 주주제안을 쏟아내고 있어, 올해 주총장은 이들의 표 대결로 뜨거워질 전망이다.
행동주의펀드 트러스톤자산운용은 16일 자신들이 2대 주주(지분율 8.96%)로 있는 의류 기업 BYC 측을 상대로 주주제안서를 보냈다. 트러스톤은 “BYC 회계장부를 열람한 결과 한석범 회장의 장남과 장녀가 각각 최대주주인 계열사 2곳에 BYC의 특정 제품을 유리한 단가에 공급한 부당 내부거래 정황이 드러났다”며 특정 변호사를 감사위원으로 선임할 것을 제안했다.
SM엔터테인먼트의 지배 구조 변화를 이끌고 있는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JB금융지주에도 주주제안을 쏟아내고 있다. 얼라인 측은 주당 900원 결산 배당과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AML) 출신 자본시장 전문가인 김기석 후보자 1인을 사외이사로 추가 선임하는 주주제안을 했다. 또 다른 행동주의 펀드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FCP)는 KT&G를 대상으로 차석용 전 LG생활건강 대표와 황우진 전 푸르덴셜 생명보험 대표를 KT&G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으로 추천하는 안건을 제안했다. 이어 KT&G를 인적분할한 뒤 분할신설회사 이사회에 두 사람을 이사로 참여시키자는 분할계획안을 추가로 제시하기도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행동주의 펀드가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공격적인 주주제안을 하는 경우가 최근 크게 늘고 있다. 2019년에는 8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47건으로 3년 만에 약 6배가 됐다. 같은 기간 일본이 1.6배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행동주의 펀드뿐 아니라 소액주주들도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9월 파운드리 전문기업 DB하이텍의 물적분할계획을 철회시킨 DB하이텍 소액주주연대는 보통주 1주당 2417원의 현금배당과 한승엽 홍익대 경영대 교수를 감사위원으로 선임 요청하는 주주제안을 보냈다. 광주신세계 소액주주 모임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2021년 자신의 광주신세계 보유 지분(지분율 52.08%)을 신세계에 매각해 주가가 급락했다며 주당 3750원의 현금배당과 감사위원 후보 추천을 주주제안으로 제출했다.
이뿐이 아니다. 현대백화점은 주주가치 훼손 논란을 피하기 위해 물적분할이 아닌 인적분할 방식의 기업 분할을 제안했다가 지난 10일 임시주총에서 부결됐다. 시장에서는 일부 주주들의 반대에도 인적분할안이 통과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결국 부결돼 다른 기업 CEO들도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정주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행동주의 펀드의 기업 경영 관여는 이제 경영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되고 있다”며 “이들의 주주권 행사를 막을 수 없는 만큼, 사전에 이들이 관여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하고 평소 기관투자자들과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