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중동산 원유(原油) 수입 비율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간 정유사들은 수입처 다변화를 추진하며 중동산 의존도를 낮춰왔지만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 불가피하게 중동산 원유 비율을 다시 늘린 것이다. 석유화학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작년까지 우리나라 나프타 수입 1위가 러시아였는데 올해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가장 많이 수입해오고 있다. 전쟁 장기화로 중동산 원유 의존은 내년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칫 중동 지역에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발생하거나 가격이 급등할 경우 에너지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원유 중동 의존 심화
6일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우리나라가 수입한 원유 중 중동산 비율은 67.1%를 기록했다. 작년 같은 기간(58.7%)보다 8%포인트 넘게 늘었다. 지난 8월엔 중동산 원유 수입 비율이 73.9%까지 늘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많이 수입하는 중동산 두바이유가 2010년대 들어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보다 비싸지는 가격 역전 현상이 계속되고,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도 계속되자 국내 정유사는 중동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수입처 다변화를 추진해왔다. 지난 2016년 미국의 원유 금수 조치가 해제된 뒤엔 미국산 원유 도입을 크게 늘리기도 했다. 2017년 81.7%에 달했던 중동산 비율은 매년 감소세를 이어가면서 지난해엔 59%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사회가 러시아에 대해 제재를 가하면서 수출이 막힌 러시아산 원유는 중동산으로 대체됐다. 국내 정유사의 정제 시설이 중동산 원유에 최적화돼 있는 데다가 지리적으로 가까워 운송도 상대적으로 쉽다는 것도 주요 요인이었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국내 정유사는 원유 수입 60%를 장기 계약으로 들여오고 나머지 40%는 현물시장에서 조달하는데, 미국산 원유는 대부분 스폿(현물) 형태로 수입해 가격 변동성이 크다 보니 단기간 수입량을 확 늘릴 수는 없다”고 했다.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며 플라스틱 소재의 핵심 원료로 사용되는 나프타 역시 같은 이유로 중동산이 늘었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올해 1~10월 한국의 러시아산 나프타 수입 물량은 191만5000t으로 전체의 8.7%에 그쳤다. 작년 러시아산 수입 비율은 23.9%로 가장 많았다. 반면 올해 같은 기간 중동산 나프타 수입은 작년보다 20%가량 늘어 전체의 63.8%를 차지했다. 국가별로는 UAE산이 23.4%늘어 1위가 됐고, 카타르(70.2%), 바레인(163%) 등 다른 중동 국가에서 수입하는 나프타도 작년보다 크게 늘었다.
◇지나친 중동 의존, 리스크 키워… “수입국 다변화해야”
하지만 원유와 나프타에 대한 높은 중동 의존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질 경우 수급 불안과 가격 급등에 따른 비용 부담을 가져올 수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 전쟁 장기화에 대비해 수입처를 다각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유 업계도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아지는 상황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우려하며 다각화에 나서고 있지만 산유국이 제한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은 “중동은 전통적으로 정세가 불안한 지역이지만, 지리적으로 가까워 불가피하게 의존해온 측면이 있다”며 “비용 부담이 있더라도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서는 수입국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