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침체와 고금리로 인한 안팎의 어려운 경제 환경 속에서도 우리나라는 올해 무역 규모 사상 첫 ‘세계 6위’에 오를 전망이다. 하지만 수출은 중국 봉쇄로 홍콩이 순위에서 밀리며 반사이익을 봤고, 수입은 에너지 가격이 폭등한 영향이 컸다. 게다가 올해 무역적자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증가한 데다 10월부터는 수출마저 역성장으로 돌아섰다. 한마디로 내년이 더 걱정인 상황이다. 실제로 국내 대기업 절반 가까이는 아직 내년 투자 계획도 세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수출 기업 10곳 중 9곳은 시중 자금 경색 상황이 6개월 이상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첫 무역 6위 달성했지만, 속은 부실

5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전체 무역액(수출+수입)은 1조4000억달러(약 1815조원)를 달성하며 세계 6위에 오를 전망이다. 2020년 9위에서 지난해 8위에 이어 올해는 두 계단 뛰어오르며 중국·미국·독일·네덜란드·일본 다음의 무역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의 경우 10월에야 도달했던 무역 1조달러도 올해는 역대 최단인 9월 14일에 일찌감치 달성했다.

자료=전국경제인연합회 그래픽=백형선

품목별로는 자동차·석유제품이 사상 최대 수출액을 기록했고,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도 연간으로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지역별로도 미국, 인도, 아세안은 11월까지 누적 수출이 이미 연간 사상 최고를 기록했고, 대(對)EU(유럽연합) 수출도 12월 실적을 더하면 역대 최고액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올해 무역 성적은 내실 면에선 아쉬운 대목이 많다. 수출 순위 상승은 올해 중국의 봉쇄 조치로 인해 중계무역이 줄어든 홍콩이 6위에서 9위로 밀려난 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수출·수입을 더한 무역 규모 확대도 원유·가스 등 에너지 수입액 증가와 석유 제품 등 에너지 수입과 관련된 제품의 단가 상승에 따른 결과다. 특히 지난 4월 이후 무역적자가 계속되고, 버팀목이던 수출마저 10~11월 두 달 연속 감소세로 돌아서면서 내년 전망은 더 어둡다. 무역협회는 내년 수출은 올해보다 4% 줄어든 6624억달러, 수입은 8% 줄어든 6762억달러로 무역 적자가 138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내년 경제…대기업 48%, “내년 투자 계획 없거나, 미정”

이런 경영 환경 속에서 국내 대표 대기업들은 내년도 사업·투자 계획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매출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내년도 국내 투자 계획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100사)의 48%가 내년 투자 계획이 없거나(10%) 아직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38%)고 답했다. 투자를 늘리기 어려운 이유로는 금융시장 경색·자금조달 애로(28.6%)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원·달러 환율 상승(18.6%), 내수시장 위축(17.6%) 순이었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황에다 유가와 환율까지 고려해야 할 변동 요소가 너무 많다”며 “임원 인사 이후에나 사업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투자 계획을 수립한 기업들의 경우 내년 투자 규모에 대해 ‘올해보다 축소’(19.2%)한다는 응답이 ‘올해보다 확대’(13.5%)를 크게 웃돌았다. 실제로 SK하이닉스의 경우 올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60% 이상 감소하면서 내년 시설 투자 규모를 올해의 절반 이하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금호석유화학도 당초 내년 말까지 완공할 예정이던 NB라텍스 생산설비 투자 집행을 늦췄고, 한화솔루션도 내년 연말까지 1600억원을 투자해 질산유도품 생산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철회했다.

전경련이 매출 1000대 기업 중 수출기업(응답기업 100사)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는 수출기업 10곳 중 9곳은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상황이 앞으로 6개월 내에 개선되기는 어렵다고 예상했다. “당분간 개선되기 어렵다”(42%)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이어 내년 4분기(25%), 3분기(23%) 순이었다. 또 응답 기업 55%는 자금 조달에 가장 부정적인 요인으로 은행 대출금리 상승을 지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