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물류의 주요 통로인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의 파나마 운하가 올해와 내년 통항료를 잇따라 인상하면서 선사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해운업계에서는 이처럼 주요 운하의 통항료가 인상될 경우 결국 소비자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커져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또 다른 요인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집트 수에즈운하청은 올해에만 수에즈 운하의 통항료를 3차례 인상했다. 2월에 기본 통항료를 선종 관계 없이 일괄적으로 6% 인상했고, 3월에 5~10%의 할증료를 도입했으며 7월에는 이 할증료를 7~20%로 올렸다. 2014년 5월 이후 수에즈 운하의 통항료가 인상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여기에 더해 지난 9월에는 내년 1월부터 모든 선종에 대한 통항료를 15%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오사마 라비 수에즈운하청장은 “현재 전 세계의 인플레이션 수준을 고려할 때 이번 인상은 불가피하고 필요한 결정”이라고 했다.
해운업계에선 올해 들어 치솟은 국제 유가가 수에즈 운하의 일방적인 통항료 인상의 배경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대체할 항로가 사실상 없는 파나마 운하와 달리 수에즈 운하는 아프리카 남쪽 희망봉으로 우회하는 항로가 있어, 유가에 따라 통항료가 조정돼 왔다. 국제 유가가 낮아 대체 항로를 택하는 선사가 늘어날 경우 수에즈 운하에서 통항료를 인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하자 선사들 입장에선 우회 항로를 택하기보다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유인이 커졌다. 이에 따라 수에즈운하청이 통항료 인상에 나섰지만, 단기간에 여러 차례 통항료를 인상한 데다 폭도 너무 커 해운업계에선 불만이 나오고 있다. HMM 관계자는 “대형 선박의 경우 운하를 한번 통과하는 데 100만달러 정도가 들기도 하는데, 15%가 일괄적으로 오르면 말 그대로 15만달러가 더 든다는 것 아니냐”고 했다. 한국해운협회는 “수에즈운하청에 공식 서신을 보내, 계속된 통항료 인상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통항료 인상을 전면 재고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고 지난달 28일 밝혔다.
통항료를 인상한 것은 파나마 운하도 마찬가지다. 파나마 운하는 2020~2021년 2년 연속으로 통항료를 인상했고 올해에는 요율안을 새롭게 책정해 내년부터 적용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파나마 운항 통항료는 2025년까지 순차적으로 인상된다. 향후 4년간 LPG 운반선이 50%, 유조선이 30~50%, 자동차운반선 20%, 벌크선 15~30%, LNG운반선과 컨테이너선이 10%씩 인상될 예정이다.
파나마 운하의 통항료 인상은 특히 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에너지 가격 인상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 닛케이는 지난 8월 “파나마 운하의 요금 인상은 일본 가정의 중요한 에너지원인 LPG 운송료 인상으로 직결될 것”이라며 “일본은 전체 LPG 사용량의 80% 이상을 수입하고 있고, 이 중 미국산이 LPG 수입의 70% 가까이를 차지한다”고 했다. 닛케이는 운하 통항료가 인상될 경우 LPG 운송에 드는 추가 비용이 약 100억엔이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런 상황은 한국도 다르지 않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 LPG 연료의 미국산 수입 의존도는 93% 이상으로, 올해 1~9월 기준 프로판과 부탄이 각각 93.4%, 93.3%로 나타났다. LNG 역시 지난해 기준 미국산 LNG가 847만8000t으로 전체 수입량 중 18.5%의 비중을 차지했다.
이처럼 국제 해운 운송료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운하 통항료가 잇따라 오르면서 선사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더 나아가 글로벌 인플레이션 요인으로도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홍콩 선사 만다린 쉬핑의 팀 헉슬리 대표는 미 CNBC와의 인터뷰에서 “수에즈 운하의 비용 인상이 물류 흐름에 대규모 영향을 미치진 않겠지만,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