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성규

올해 주요 대기업 사장단 인사에서 부회장 승진자는 전무(全無)했다. 1일 사장단·임원 인사를 단행한 SK그룹은 물론 지난달 사장단 인사를 한 현대차·LG·GS·현대중공업 그룹에서도 부회장 승진자는 ‘0명’이었다. 지난해에만 해도 그룹마다 부회장 승진자가 적게는 1~2명에서 많게는 4명까지 나와 ‘재계 부회장 전성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또 그룹마다 CEO(최고경영자) 세대교체설이 흘러나왔지만, 대부분의 회사에서 주력 계열사 CEO들은 유임됐다.

지난해 국내 주요 기업들은 코로나 상황에도 불구하고 좋은 실적을 거둔 것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큰 폭의 임원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그런데 1년 만에 분위기가 급반전해, 올해 임원 인사에서는 칼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특히 내년 경기는 더 어두워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선제적으로 조직을 축소하거나 투자·경영계획을 보수적으로 이끌어 나가겠다는 전략이 연말 임원 인사에서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임원 승진 잔치는 끝났다

지난달 30일 사장단 인사를 단행한 현대차그룹에서 사장 승진자는 외국인인 루크 동커볼케 부사장 1명뿐이었다. 사장 3명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는데 승진자는 1명에 그친 것이다. 사장급이었던 현대글로비스 대표 자리에도 이규복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켜 내정했다. 한때 부회장·사장단이 포진했던 현대차그룹이 최고 경영진 직급을 낮추고 조직을 슬림화한 것이다.

같은 날 임원 인사를 발표한 재계 서열 8위 GS그룹은 사장 승진자가 한 명도 없었다. 부사장 승진 2명, 전무 승진 6명, 상무 신규 선임 21명 등 총 29명에 대한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지난해에는 사장 승진 2명을 비롯해 전체 임원 승진 규모가 39명에 달했는데, 올해는 25% 이상 감소한 것이다. 주력 계열사 CEO들은 모두 유임됐다. GS 측은 “유가와 환율·금리 등 사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의 변동성이 크고 이에 대한 민첩한 대응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기 때문에 중단 없는 리더십에 가치를 뒀다”고 밝혔다.

지난달 사장단·임원인사를 단행한 LG그룹 역시 올해 부회장 승진은 제로였다. 사장 승진 4명을 비롯해 부사장 승진 14명, 전무 승진 28명 등 총 160명의 승진에 그쳤다. 지난해 권봉석 사장의 부회장 승진을 비롯해 총 179명이 승진한 것과 비교하면, 10% 이상 승진 규모가 줄어든 것이다. 지난달 초 사장단 인사를 단행한 현대중공업그룹에서도 부회장 승진자는 1명도 없었다. 지난해 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현대오일뱅크·현대제뉴인 등 4곳에서 부회장 승진자가 나왔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올해는 ‘사장(社長)이 사장(死藏)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장 승진조차 많지 않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다음 주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를 시작으로 연말 임원 인사를 진행하는 삼성그룹 역시 비슷한 분위기가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정현호 사업지원 TF장과 한종희 사장이 각각 부회장으로 승진했고 대표이사들이 모두 바뀌었는데, 올해는 부회장 승진이나 CEO 변화는 없을 전망이다.

◇올해 100대 기업 임원 7100명…내년엔 다시 6000명대로

전문가들은 주요 그룹뿐 아니라 대부분의 기업에서 인사 혹한기를 겪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헤드헌팅업체 유니코써치는 올 연말부터 내년 초까지 이어질 2023년 대기업 임원 인사의 가장 큰 특징으로 임원 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을 꼽았다. 매출 100대 기업 임원 수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소폭 감소하다 올해 처음으로 7100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100대 기업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60% 이상 급증한 덕분에 임원 숫자도 500명 넘게 늘어난 것이다. 김혜양 유니코써치 대표는 “기업들마다 적어도 임원 2~3명 정도는 줄이겠다는 긴축 경영 움직임이 있어, 내년 100대 기업 임원 수는 6850~6950명 정도로 예상된다”며 “특히 사업 실적 악화와 인건비 부담이 컸던 IT 업종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고, 화학·금융·건설·식품 분야에서도 임원 책상이 사라지는 곳이 다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