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인공지능과 함께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 기술인 이차전지 분야에서 한국의 산업 경쟁력이 중국에 비해 크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전기차 배터리 전 세계 시장점유율 1위인 중국에 비해 원료 조달, 생산, 재활용으로 이어지는 이차전지 산업 사이클 모두에서 뒤지고 있고, 앞으로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5일 발표한 ‘한국과 중국의 이차전지 공급망 진단 및 정책 제언’에 담긴 현실 진단이다.

◇한국, 2차전지 원료·제조·재활용 모든 분야에서 중국에 완패

전경련 의뢰를 받아 이번 보고서를 작성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한·중 이차전지 공급망 사슬을 각각 5점 만점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공급망의 첫 단계인 원료 확보 분야에서 한국은 1.3점(매우 미흡), 중국은 3.3점(보통)을 받았다.

리튬, 코발트, 니켈 같은 이차전지 주요 광물은 호주, 콩고, 인도네시아, 중국을 포함한 특정 지역에 매장량이 집중돼 있다. 특히 중국은 이들 광물을 가공한 수산화리튬, 황산코발트 등의 생산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한국은 원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데, 특히 중국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수산화리튬의 경우 중국 의존율은 2018년 65%에서 지난해 84%, 황산코발트는 50%에서 87%로 높아졌다. 황산망간은 중국 수입량이 99%에 달했다.

한국은 가장 강점이 있는 이차전지 제조·생산 면에서도 3점(보통)을 받아 중국(4점·우수)에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차전지 완제품 제조 경쟁력은 우수하지만, 4대 부품 소재인 양극재·음극재·전해액·분리막 분야에서 점유율이 낮고, 해외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중국은 4대 부품 소재 분야 모두 세계 1위 생산국이다. 중국은 또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가격이 싸고 안정성이 우수한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개발해 최근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친환경 이슈로 떠오른 폐배터리 재활용 분야에서도 한국은 1.8점(미흡), 중국은 4.3점(우수)으로 격차가 컸다. 중국은 2017년 17개 지역에서 폐배터리 재활용 시범사업을 시작했고 회수·포장·해체를 포함한 배터리 재활용 분야에서 국가 표준도 만들었다.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기업이 올 상반기 기준 4만600개에 이를 정도로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이 활성화됐다. 이에 반해 2020년 전기차 폐배터리 수거와 재활용에 대한 제도를 마련하기 시작한 한국은 아직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예컨대 전기차 배터리의 전 생애주기 이력을 공공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해외 자원개발, 폐배터리 재활용 생태계 구축에 적극 나서야”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김유정 센터장은 “한국이 이차전지 공급망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면 원료 확보와 재활용 생태계 구축에 공격적으로 뛰어들어야한다”고 제언했다. 중국은 최대 코발트 생산국 콩고민주공화국에서 2008년부터 광업권을 확보해왔다. 세계 1위 전기차배터리 제조사 중국 CATL은 2018년부터 2021년까지 8건의 니켈·리튬·코발트 관련 광산 개발 지분을 확보했고, 3위 중국 BYD사도 올해 아프리카 6개 리튬 광산에 대한 권리를 확보했다. 김 센터장은 “해외자원을 개발하려는 기업을 위한 해외자원개발 기금이나 자원개발 연계 정부개발원조 같은 정부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일 ‘배터리 패스’ 프로젝트나 일본 ‘배터리 공급망 디지털 플랫폼’처럼 배터리 생산·이용·폐기·재사용·재활용에 이르는 공급망 정보들을 디지털로 관리할 수 있는 정보 플랫폼 구축도 시급하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한국은 폐배터리 재사용이나 재(再)제조 관련 제도나 산업화가 부족하고 폐배터리에 대한 인증 기준도 확립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 생태계 구축을 위한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