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인기 주택가인 16구의 이폴리트(47)씨 집은 작은 방 세 개에 거실과 주방, 욕실이 딸린 전용면적 80㎡(약 24평) 규모의 소형 아파트다. 비슷한 크기의 주변 아파트 월세는 3000유로(426만원) 이상. 하지만 이폴리트씨는 이보다 7% 정도 싼 2800유로를 내고 있다. 이폴리트씨는 “이 집의 에너지 효율 등급이 주변 아파트보다 낮은 F등급인 탓”이라며 “난방비가 많이 들어 월세를 비싸게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가 지난겨울 지출한 월평균 난방비는 300유로(약 42만원)에 달한다. 비슷한 크기지만 ‘C등급’인 옆 아파트의 2배 수준이다.

유럽에선 에너지 효율 등급이 건물 가치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모든 주거·상업용 건물은 물론 공공건물에 에너지 효율성 등급을 매겨 이를 의무적으로 공개토록 하는 유럽연합(EU) 정책 때문이다. ㎡당 에너지 소비량을 기준으로 난방 효율을 따져 1~100점까지 점수를 매기고, 이에 따라 A에서 G까지 총 7개 등급을 부여한다. 부동산 임대·매매 공고에는 반드시 이 에너지 효율성 등급이 표시되어 있다. EU는 2009년부터 건물의 에너지 절감을 목표로 이와 같은 정책을 도입했다. 탄소 배출 규제가 심해지고, 난방용 에너지 가격마저 폭등하면서 부동산 가치를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됐다.

부동산 중개 업체 센추리21의 르프랑수아 매니저는 “2025년부터는 에너지 효율 F등급 이상, 2028년부터는 E등급 이상 건물만 신규 임대가 가능한 규제가 시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환경청에 따르면 프랑스 내 건물 약 41%가 에너지 효율 E~G 등급에 머물고 있다. 르프랑수아 매니저는 “이들 건물의 경우 단열과 난방 시설 개선 등의 공사를 해 에너지 효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며 “건물주와 임대인들의 고민이 많다”고 했다.

프랑스와 독일 등은 에너지 절감을 위해 집을 고칠 경우 보조금이나 특별 융자 같은 재정적 지원도 해준다. 프랑스의 경우 구식 가스·전기 난방 시스템을 에너지 효율이 3~4배 높은 히트펌프식으로 바꿀 경우 주택당 최대 9000유로(약1250만원)까지 보조금을 주고 있다. 독일은 1~2가구가 거주하는 개인 주택의 경우 보수 비용의 최대 50%, 1만유로까지 보조금을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