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은 스스로를 ‘3개의 모자’(SK그룹 회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2030 부산엑스포공동유치위원장)를 쓰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 11일 대한상의 집무실에서 가진 국내 언론과의 첫 인터뷰에서 “사이버상에 2030 부산 엑스포 플랫폼을 만들어 기후변화, 인권 등 글로벌 어젠다에 대한 설루션을 논의하는 장을 만들겠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요즘 재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이다. 그는 지난 5월 말부터 2030부산엑스포공동유치위원장까지 맡아 프랑스·일본·미국 등 전 세계를 누비며 유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인터뷰를 진행한 11일도 주한 외교관들과 만찬을 하며 부산엑스포 유치 활동을 펼쳤다. 다음 날에는 SK그룹 회장으로 7개 이상 일정을 소화했다. 공동 유치위원장을 맡았을 때 “모자 2개(SK그룹 회장, 대한상의 회장)도 힘들었는데, 모자 3개가 됐다. 이제 모자는 제발 그만…”이라고 말한 너스레가 농담이 아니었던 것이다.

최 회장은 이날 서울 남대문 대한상의 집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2030 엑스포는 우리가 세계를 이끌어가는 선도 국가로 올라서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올해 안에 사이버 공간에서 2030 부산엑스포가 시작됐다는 것을 알리고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플랫폼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이를 통해 글로벌 이슈에 끌려다니는 국가가 아니라 글로벌 어젠다를 선점하는 국가로 탈바꿈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는 엑스포 유치 외에도 현재 미·중 갈등 상황과 고환율·고금리 등 어려운 경영 환경에 대한 질문에도 답을 피하지 않았다. 20년 넘게 SK그룹을 이끌고 있는 그는 “어려운 경영 환경이 1년을 가든, 5년을 가든 기업인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살아남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프트파워를 가진 선도 국가로 발돋움”

-2030 부산엑스포가 가진 의미는 뭐라고 생각하나.

“우리는 88 올림픽을 통해 중진국에, 2002년 월드컵을 치르며 선진국에 진입했다. 2030년 엑스포는 우리가 세계를 이끌어가는 선도 국가로 올라서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세계를 이끌어가는 소프트파워를 가진 나라로 발돋움하는 발판을 마련하는 게 2030 엑스포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강력한 경쟁자라고 알고 있다. 유치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보나.

“사우디가 먼저 시동을 걸었지만 지지 국가가 늘지 않고 제자리걸음이다. 우리가 지지표를 빼앗아 오는 상황이다. 그동안 (사우디에 대해) 지지 선언을 한 것이 그대로 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엑스포 유치를 위해서는 국민적 관심과 참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래 세대를 위한 참신한 어젠다를 제시해 세계인에게 어필해야 하는데, 과거 올림픽이나 월드컵 때 보여준 것처럼 국민적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대한상의에서는 국민 참여를 이끌어낼 플랫폼을 올해 내에 출범시킬 계획이다. 이 플랫폼에서 2030 엑스포를 위한 다양한 이슈를 끄집어내고, ‘2030 부산엑스포가 이미 시작됐다’고 알리는 것이다.”

-엑스포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겠다는 뜻인가.

“2030 엑스포는 과거와 전혀 다른 형태의 엑스포가 되기를 바란다. 행사 준비를 위해 엄청난 인프라 투자를 하고 전 세계 관람객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차원을 넘어서, 글로벌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루션을 제시하는 그런 엑스포를 만들고 싶다.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그동안 국제적 어젠다를 선도한 적은 없다. 맨날 따라다니니까 새로운 이슈가 나오면 우리는 중간에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우리가 어젠다를 끌고 나가야 한다.”

최태원 회장은 스스로를 ‘3개의 모자’(SK그룹 회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2030 부산엑스포공동유치위원장)를 쓰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 11일 대한상의 집무실에서 가진 국내 언론과의 첫 인터뷰에서 “사이버상에 2030 부산 엑스포 플랫폼을 만들어 기후변화, 인권 등 글로벌 어젠다에 대한 설루션을 논의하는 장을 만들겠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어떤 어젠다가 있을 수 있나.

“기후변화나 인권도 중요한 어젠다가 될 수 있다. 아시아에서 경제 개발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달성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이런 면에서는 확실히 우리가 사우디보다 유리하다. 2030년이면 진짜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 주도 세력이 될 것이다. 그들이 주도 세력이 됐을 때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지 무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2030 엑스포는 사우디에 양보하는 대신 사우디 원전이나 네옴시티 같은 사우디 개발 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2035년 엑스포를 유치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2035년 엑스포 유치전에서는 어떤 나라가 경쟁자가 될지 누가 아나. 과거 올림픽 유치 사례를 봤을 때도 ‘어디를 피해서 다른 나라와 어떻게 하고’라는 식으로는 성공하기 힘들다. 또 사우디 네옴시티가 천문학적인 규모의 프로젝트이긴 하지만 사우디 혼자 다 할 수는 없다. 한국 기업에 자연스럽게 비즈니스 기회가 열릴 것이다. 경제 협력과 엑스포 유치, 두 가지는 분리해 봐야 한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인들이 기업 경영이라는 본업을 제쳐두고 엑스포에 너무 올인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한국 대기업들이 상당히 글로벌화돼 있다. 여러 나라를 다녀보면 세상 움직임도 훨씬 더 잘 보이고 기업 비즈니스 기회도 계속 생긴다. 해외 가서 ‘부산엑스포 도와주세요’ 그러면 선선히 ‘그래’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결국 무엇인가 협력 관계를 고민해야 한다. 이런 활동을 통해 기업 외연을 넓히고 기업 활동이 더 잘될 수 있다. 특히 요즘 중국과 미국이 디커플링(탈동조화)되는 상황에서 제3의 설루션은 계속 필요하다. 이런 선택지를 많이 확보하고 있는 것은 비즈니스 차원에서도 상당히 좋다.”

삼성·현대차·LG 등 국내 주요 그룹은 투표권을 가진 BIE(국제박람회기구) 회원 170국을 대상으로 담당 국가를 나눠 유치 활동을 펼치고 있다. 기업인들이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해외 출장 다닌 거리를 합산하면 약 78만5000㎞. 지구에서 달까지(약 38만㎞) 왕복 거리보다 더 길다.

한덕수 국무총리(오른쪽에서 셋째)와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오른쪽에서 둘째)이 지난 6월 파리에서 로버트 클라크 2027년 미국 미네소타 인정엑스포 유치위원장을 만나 엑스포 유치와 관련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총리실

◇”지금 같은 경제 위기 내년까지 갈 것”

-고환율, 고금리, 인플레이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갈수록 경제 변수가 나빠지고 있는데, 가장 신경 쓰는 변수는.

“지정학적 문제가 경제를 때리고 있다. 그동안 이자나 환율이 안정적이었는데, 그런 세상은 끝난 것 같다. 지금 같은 상황이 내년까지는 지속될 것이다. 기업인으로서 내가 해야 하는 것은 ‘이런 상황이 1년 가든, 5년 가든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측을 갖고 하는 것은 위험하다. 예측이 아니라 대책을 세워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나

“기본부터 아주 나쁜 것까지 서너 가지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 예전에는 1년 계획도 세워 척척 실천했지만, 지금은 당장 3개월 앞도 못 읽는 상황이 너무 많다. 미국 Fed(연방준비제도)가 계속 금리를 올리는 상황인데, 우선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진정이 돼야 한다. 그때까지는 소나기가 온다고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세차니, 청소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요즘 SK그룹은 미국에 공을 많이 들이는 것 같다.

“요즘은 글로벌 현지에서 정보를 바로 파악해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워낙 사건과 이야기가 빨리 진행되니 현장에 가까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중국을 완전히 배척할 수 없다. BBC(배터리, 바이오, 반도체)에서는 별도 공급망을 구축하더라도 환경문제 같은 이슈는 글로벌 협력을 해야 한다. 미국 투자가 많이 이뤄졌다는 것은 미국 언론과 정부의 관심을 받다 보니 착시 현상이 있다. SK그룹 전체 투자 250조원 중 170조원은 한국, 나머지 80조원이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SK하이닉스를 인수하고 회사의 위상이 달라졌다. 회장 취임 후 가장 큰 업적 아닌가.

“(웃음) 하이닉스 인수보다 지금까지 SK그룹이 망하지 않고 성장해 온 게 나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업이 망하지 않으려면 계속 성장하고 굴러가야 한다. 회사 내부에서 문제가 자라는 속도는 상상 이상으로 빠르다. 회사의 성장 속도가 웬만큼 빠르지 않으면 문제 해결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빠르게 성장을 해야 글로벌 전쟁에서도 살아남고, 새로운 산업으로 전환도 할 수 있다.”

-기업 성장을 중시하는 것은 회장의 평소 지론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충돌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지는 않다. 요즘은 유전 탐사를 할 때도 ESG적 요소를 고민해야 한다. 원유 채굴을 할 때부터 탄소 배출 없이 뽑아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게다가 글로벌 펀드나 연기금들이 투자 결정을 할 때 ESG 지표를 중요한 척도로 삼기 때문에 이걸 하지 않으면 주가 부양이 안 된다. 특정 정권이나 패션이 아니라 기업과 나라의 운명이 걸린 문제다.”

-재계에서는 최태원 회장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처럼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생각인가.

“거버넌스(지배 구조)는 정답이 없다. 나도 육순을 넘다 보니 거버넌스 체제를 상당히 많이 고민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총수·회장이 모든 것을 다 결정하는 형태의 거버넌스는 거의 끝났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계열사 CEO(최고경영자)들에게 ‘나는 이런 의견이다, 이런 건 생각해봤냐’는 식으로 조언만 하고, 주요 결정은 각 사 CEO들에게 맡긴다. 난 자녀들이 ‘또 하나의 나’가 되는 건 원하지 않고 그들도 그런 꿈을 꾸지 않는다.”

☞최태원 회장은

1960년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시카고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박사 통합 과정을 수료했다. 1991년 SK 부장으로 입사했고, 부친이 타계한 1998년 SK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회장 취임 후 과감한 투자와 하이닉스 인수 등으로 SK그룹은 재계 5위에서 2위로 올랐다. 2021년 대한상의 회장으로 취임했다. 4대 그룹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이 된 것은 처음이다.

건강관리를 위해 1일 1식 하고, 매년 11월 한 달간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MBTI는 INTP(논리적인 사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