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이 2조원에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로 한 가운데, 대우조선해양이 안고 있는 2조3300억원대 영구채 해소 문제가 최대주주(지분 55.7%)인 산업은행(이하 산은)과 한화의 향후 협상에서 최대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대우조선해양은 과거 수출입은행(이하 수은)으로부터 공적 자금을 수혈받은 뒤 영구채(만기 30년짜리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이 영구채를 해소하지 않으면 한화는 대우조선해양 인수와 함께 막대한 빚을 떠안는 셈이 된다. 조선업계 고위 관계자는 “채권자인 수은은 대우조선해양 지분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도 갖고 있어 한화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면서 “영구채 협상을 순조롭게 마무리하는 게 이번 매각 성사의 관건 중 하나”라고 말했다.
◇2조3300억원 영구채 어떻게 해소하나
산은은 지난 26일 매각 계획을 발표하면서 수은이 보유 중인 영구채의 스텝업(금리 조정)을 유예하기로 하고, 지금까지 누적된 미지급 이자는 주식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영구채는 당초 올해 말까지는 1% 이자율이 적용되고 내년부터는 10% 이상의 금리가 적용될 예정이었지만 인수자인 한화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1% 금리를 당분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또 올 상반기까지 밀린 이자 1192억원은 대우조선해양 지분으로 바꿔 이자 지급 의무를 없애주기로 했다.
하지만 수은은 영구채 자체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우조선해양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46~2048년에 상환 기일이 도래하는 2조3328억원 규모 만기 30년짜리 전환사채를 수은에 발행한 상태다. 대우조선해양이 공적 자금을 갚지 못하자 수은이 대우조선해양의 재무 건전성을 고려해 영구채로 돌린 것이다. 국제회계기준상 영구채는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하지만 실제 성격에 따라 부채로 잡으면 대우조선해양은 이미 완전 자본 잠식 상태다.
한화는 영구채의 규모 자체도 부담스럽지만 수은이 영구채를 지분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점을 껄끄럽게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한화는 대우조선해양 유상증자에 참여해 최대주주로 올라설 계획인데, 만약 이후 수은이 영구채를 전액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산은과 수은의 지분을 합하면 한화를 넘어선다”고 말했다. 정부가 대우조선해양을 한화에 넘기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수은이 주식을 전환할 가능성이 낮다고 해도 영구채는 한화로선 예민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기연장 방식 유력…지분 맞교환 설도
조선업계에선 산은과 한화가 협상을 통해 현재와 같은 조건으로 영구채의 만기를 연장해주고 한화가 영구채를 조금씩 갚는 방식으로 합의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조선업체 임원은 “한화가 2조원을 인수 대금으로 투입하는 상황에서 영구채를 해소하기 위해 한 번에 2조3300억원을 추가로 지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수은도 대우조선에서 아예 못 받을 수도 있었던 돈을 받는 방식이기 때문에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경우 민간 기업에 인수된 대우조선에 시중 금리보다 훨씬 낮은 1% 이자율을 계속 제공하는 것은 한화에 지나친 특혜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일각에선 수은과 한화가 지분을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단번에 영구채를 해소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수은이 영구채를 지분으로 전환한 뒤 이를 한화에 넘기고, 한화의 일정 지분을 수은에 준다는 시나리오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이 방식은 한화가 현금 유출 없이 영구채를 해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경영 자율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추진 계획이 발표된 이후 한화 그룹 방산 계열사 주가는 대부분 하락했다. 지난 26일 10.8% 하락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는 27일에도 1.66% 떨어졌고 한화시스템도 26일 7.17%, 27일 1.63% 하락했다. 대우조선해양 주가도 26일에는 13.41% 급등했지만 27일에는 18.24% 급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