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병뚜껑 제조 업체로 시작한 독일 기업 ‘핸슬러’는 2세 경영이 자리를 잡으며 플라스틱 제품 8만여 종을 만드는 강소 기업으로 성장했다. 창업주의 두 아들이 회사를 물려받던 2010년 당시 낸 상속세는 ‘0원’. 가업 승계를 촉진하는 독일의 상속세 제도 덕분이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가업 상속의 경우 일정 기간 업종을 유지해야 하지만 독일은 자유롭게 업종 전환을 할 수 있어 회사 성장이 가능했다.
일본 도치기현에서 설비·공사업을 하는 신에이기업 시부야 도모노리 대표는 창업자인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하자 2010년 대표로 취임했다. 대표에는 올랐지만 세금 부담 때문에 주식을 증여 받기를 주저하던 그는 2018년 사업 승계 특례 조치가 시행되자 3300만엔(약 3억2300만원)에 이르는 세금 납부를 유예받고 가업을 승계했다.
◇가업 승계 장려하는 독일… 일본도 제도 개선 후 급증
우리나라보다 앞서 경영자의 고령화와 후계자 부족 문제를 겪은 일본은 2017년 사업 승계 5개년 계획을 확정하고, 이듬해인 2018년 특례사업승계세제를 만들었다. 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은 “당시 가업 승계를 원활하게 하지 않으면 중소기업 폐업이 급증하면서 향후 10년간 일자리 650만 개와 22조엔(약 215조원)에 이르는 GDP(국내총생산)가 증발할 것이라는 일본 중소기업청의 자료가 나올 정도로 위기감이 컸다”고 말했다.
일본은 대표직 유지, 지분 보유와 같은 요건만 만족하면 상속·증여세 전액에 대해 납부를 유예하고, 승계 후 의무 고용 요건을 맞추지 못하더라도 계속 유예해주기로 했다. 후계자가 폐업하거나 회사를 매각하면 폐업·매각 때 평가액에 따라 세금을 계산하게 해 상속 이후 경영 환경 변화에 대한 부담도 덜어줬다. 이처럼 기업에 친화적인 상속세 제도가 도입되자 2017년 276건에 불과했던 사업 승계 제도 신청 건수는 2018년 2931건, 2019년 3444건으로 2년 만에 12배로 급증했다. 이승용 경총 경제분석팀장은 “일본의 가업 상속은 종업원 평균 80% 이상 유지와 같은 까다로운 조건 탓에 앞서 10년 동안 신청 건수가 2500건에 불과했지만 2018년 특례 조치 이후에는 30개월 만에 7678건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독일도 배우자와 직계 가족에 대한 상속세율이 최고 30%로 한국(최고 60%)보다 훨씬 낮은 데다 2016년부터는 제도 개선을 통해 자산 2600만유로(약 350억원)까지 상속세를 면제해주고 있다. 2600만유로가 넘는 자산에 대해서도 9000만유로(약 1200억원)까지 감면율을 단계적으로 줄이거나 심사를 통해 상속세를 면제하는 방식으로 부담을 크게 낮췄다. 한국과 가장 큰 차이는 독일은 가업 승계 시 업종 제한 규정이 없다. 다른 업종으로 진출하면 상속세를 추징하는 한국과 달리, 다른 업종으로 영역을 확대해 회사를 키울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 같은 제도 덕분에 독일에서는 연평균 1만3000건, 공제 액수로는 연간 10조원에 달하는 가업 상속이 진행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2016~2020년 5년간 연평균 상속 공제 건수가 93건에 그치고, 그마저도 이 기간 전체 건수의 10%가 넘는 57건이 사후 관리 의무를 지키지 못해 상속세를 추징당하고 있다.
◇장수 기업, 국가 경제에 유리
전문가들은 과도한 상속세 부담으로 승계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면 일자리뿐 아니라 축적된 기술과 노하우, 생산 설비 같은 다양한 사회·경제적 자산이 사라진다고 우려한다. 국가 경쟁력 관점에서 가업 승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은 “해외는 기업의 승계를 ‘부의 대물림’이 아닌 ‘고용과 기술의 승계’나 ‘제2의 창업’으로 본다”며 “해외처럼 가업 승계를 지원해 산업의 실핏줄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