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희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연구원

1세기 중엽 로마의 지성인 루시우스 세네카는 “인간은 항상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면서도, 실제로는 시간이 무한정인 것처럼 행동한다”고 통찰했다. 대한민국의 2050 탄소 중립 달성은 세계 시민으로서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미래 세대를 위해서 탄소 중립 달성이 시급하다는 사람들조차, 가끔은 시간이 충분하다는 듯 행동한다.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 모든 가용한 기술을 사용하는 대신 진영과 이념을 우선하며, 느긋하고 낭만적인 미래만을 그리기 때문이다.

정부는 신한울 3, 4호기 건설 재개 등을 통해 원전 최강국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실천하고 있다. 탄소 중립과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원자력이 급부상하는 세계적 흐름, 원자력을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하고 국부에도 도움이 되도록 한다는 측면에서 맞는 일이다.

하지만 원전 최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해결 과제가 남아 있다. 바로 원자력을 이용한 후에 생기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의 최종 처분문제다. 사용후핵연료는 직접 처분이 가능하면서 재처리가 가능한 자원이다. 그러나 국제조약에 따른 재처리가 어려운 우리는 직접 처분이란 선택지만 존재한다. “버리느냐 재활용하느냐”는 강대국의 특권으로 우리의 시간은 넉넉하지 못하다. 고리 1호기, 월성 1호기가 떠난 지금에도 최종 처분장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지난 두 번의 정부에서 고준위 방폐물 처분에 대해 일정과 절차를 담은 기본계획을 확정한 것이 그나마 성과다.

우리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국가들은 고준위 방폐물 처분장을 확보하고 운영에 들어가고 있다. 핀란드는 2024년 처분장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고, 스웨덴은 지난 1월 건설 허가 승인이 이루어졌다. 핀란드는 2001년, 스웨덴은 2009년 처분장 부지를 선정하는 등 우리와 달리 시간이 많은 것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우리는 자신의 원전 철학과 무관하게 원전이 만든 저렴한 무탄소 전기의 혜택을 누리고 살아왔다. 이미 존재하는 사용후핵연료 처분은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우리 세대가 “지금이라도 시작하자”고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가진 최고의 과학기술로 고준위 폐기물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음을 국민에게 증명하고 신뢰를 얻어야 한다. 진영과 철학을 넘어 모두가 노력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