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딜로이트는 미국 캔자스주 위치타주립대 이노베이션캠퍼스에 스마트 팩토리를 열었다. 딜로이트를 비롯해 AWS·SAP·지멘스 등 여러 기업과 전문가들이 AI(인공지능)·클라우드·머신러닝·빅데이터·로보틱스 등 첨단 기술을 결합해 미래형 공장을 보여주는 곳이다. 딜로이트는 1년 내 이곳을 찾는 관람객은 5000명을 웃돌 것으로 예상했다. 스티븐 레이퍼 딜로이트 스마트 팩토리 리더는 “위치타 스마트 팩토리는 세계 최고의 인재와 기술을 결합해 제조업의 미래를 보여줄 것”이라며 “인더스트리 4.0을 현실로 만드는 곳”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와 오일 쇼크를 넘어서는 유가 폭등, 각국 정부의 금리 인상 등이 이어지며 글로벌 경제 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스마트 팩토리에 대한 관심이 국내외에서 커지고 있다. 코로나 회복 국면에서 인력 부족이 심화하는 가운데 과거 방식의 제조 시스템으로는 더는 대응이 어렵다는 공감대도 확산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확산하는 스마트 팩토리
스마트 팩토리는 제품의 기획부터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ICT(정보통신) 기술로 통합해 최소 비용과 시간으로 고객 맞춤형 제품을 생산하는 첨단 지능형 공장을 말한다. 센서와 소프트웨어 등을 이용해 자동으로 문제점을 인식해 해결하고, AI·빅데이터·클라우드 등을 활용해 공정을 유연하게 바꾼다. 1970년대부터 전자 기술과 IT(정보 기술)를 이용해 추진한 ‘공장 자동화’에서 더 진화한 개념이다. 단지 생산 공정만 바뀌는 게 아니라 제품 제작 전 시뮬레이션과 같은 기획·설계부터 생산 현황에 맞춰 실시간으로 자동 수주와 발주를 진행하는 유통·판매 단계까지 공장 운영의 모든 과정을 아우른다.
스마트 팩토리는 선진국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으로 퍼지고 있다.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에 있는 지멘스의 암베르크 공장은 스마트 팩토리를 가장 잘 구현한 공장 중 한 곳으로 꼽힌다. 1989년 공장이 가동을 시작한 후 공장 자동화 단계를 거쳐 스마트 공장으로 진화했다. 가치 사슬 전체의 자동화 비율은 75%에 이르고, 1200여 종에 이르는 제품을 1초당 1개씩 연간 1700만개 생산하고 있다. 지멘스 관계자는 “스마트 로봇 공학, AI 기반 프로세스 제어 등을 적용한 결과 공장 생산량을 140% 끌어올렸다”며 “창립 이후 생산 라인 직원 수는 1200여 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전체 생산량은 9배 늘었다”고 말했다.
미국 화이자와 코로나 백신을 공동 개발한 독일 바이오엔테크도 스마트 팩토리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코로나 확산 국면에서 헤센주 마르부르크에 있는 기존 공장을 스마트 팩토리 개념을 적용, 5개월 만에 코로나 백신 전용 스마트 팩토리로 변모시켰다.
핀란드 네슬레 공장도 지난해 스마트 공장으로 탈바꿈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공장의 자재 흐름을 시뮬레이션하고, 공장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검증해 실제 구축 전에 공정을 최적화했다. 수퍼카로 유명한 포르셰도 신형 타이칸 전기차 생산 라인에 스마트 팩토리 기술을 적용했다.
◇국내 기업들도 스마트 팩토리에 속도
국내 기업들도 최근 들어 스마트 팩토리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소기업들도 상당수가 1단계에 해당하는 기초 수준 스마트 팩토리를 구축한 가운데 글로벌 경쟁력을 지닌 대기업들은 고도화된 스마트 팩토리를 구현하고 있다. 올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도 중소기업 스마트 공장 구축을 국정 과제에 포함하고 정부 차원에서 지원에 나서고 있다.
포스코는 2019년 국내 기업 최초로 세계경제포럼(WEF)이 선정한 ‘등대 공장’에 이름을 올렸다. 어두운 밤하늘에 ‘등대’가 불을 비춰 길을 안내하듯 사물인터넷(IoT)·AI빅데이터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세계 제조업의 미래를 혁신적으로 이끄는 공장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포스코 고유의 연속 공정용 스마트 팩토리 플랫폼인 ‘포스프레임(PosFrame)’이 생산 현장의 다양한 데이터를 고속으로 수집해 분석·예측하고, AI로 제어한다.
한화는 태양광·항공엔진 부품 등에 스마트 팩토리를 도입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 태양광 셀·모듈 공장인 한화솔루션 큐셀 부문 진천 공장은 셀 원재료인 웨이퍼 입고부터 모듈 출하까지 모든 공정이 자동화돼 있다. 최근에는 손목에 착용하는 웨어러블 장비를 도입해 근무자가 실시간으로 알림을 받아 조치할 수 있도록 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 사업장은 국내 유일 항공엔진 부품 스마트 팩토리이기도 하다.
현대중공업은 선박 설계부터 생산까지 모든 공정을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FOS 프로젝트’에 착수, 2030년까지 스마트 조선소를 구현한다. ‘지능형 자율 운영 조선소’가 되면 생산성은 30% 높아지고, 공기는 30% 줄어든다.
두산은 협동 로봇을 중심으로 스마트 팩토리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기존 산업용 로봇과 달리 협동 로봇은 안전 펜스 없이 작업자와 함께 일할 수 있는 로봇이다. 협동 로봇 시장은 노동력 감소, 임금 상승에 따라 연평균 23% 성장, 현재 1조원에서 2026년에는 3조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효성은 2018년부터 중국 취저우, 자싱, 광둥, 주하이와 베트남 동나이, 브라질, 터키 등 효성티앤씨 스판덱스 공장 7곳에 스마트 팩토리를 도입해 원료 수입부터 생산, 출하까지 데이터를 수집·분석하고 모든 공정을 제어하고 있다.
김수영 호서대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소품종 대량생산 방식은 다품종 유연 생산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스마트 팩토리는 이러한 변화를 이끌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