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7조8000억원에 이르는 사상 최악 적자를 낸 한국전력이 내년부터는 회사채 발행까지 막힐 위기에 처했다. 적자 규모가 너무 커지면서 회사채 발행 한도가 쪼그라든 탓으로, 운영 자금을 빚으로 메우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올 1분기 한전은 빚을 내 운영자금을 대는 ‘돌려막기’ 대가로 총 2237억원(별도기준)의 이자 비용을 치렀다. 하루 25억원꼴이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이런 돌려막기도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전의 회사채 발행 한도는 직전 연도 말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액의 두 배다. 올해 한도는 자본금 3조2000억원에 지난해 적립금 42조7000억원을 더한 금액의 두 배인 92조원이었다. 올 들어 회사채 15조원가량을 발행한 한전의 현재 회사채 발행 잔액은 51조원에 이른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올해 한전의 적자는 25조~3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 경우 결손금이 쌓이면서 회사채 발행 한도는 이미 발행한 규모를 밑도는 30조~40조원으로 쪼그라들어 회사채 발행을 할 수 없게 된다. 이종수 서울대 교수는 “회사채를 발행해 운영 자금 및 각종 투자금으로 쓰던 구조가 완전히 깨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자금 조달이 막히면 송·배전망 관리가 부실해지고, 전력 구매 대금까지 제때 지급하지 못해 정전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전기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발전사에서 비싸게 전기를 사서 공장·가정 등에 밑지고 파는 현 구조로는 적자만 커진다는 것이다. 이런 한전을 두고 일각에선 ‘이젠 독점 기업 아닌 독박 기업’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하지만 반세기 만의 최악 인플레이션이 덮친 상황에서 물가 상승을 자극하는 큰 폭의 전기요금 인상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한전의 딜레마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타격이 큰 자영업자의 반발이 거센 데다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면서 국가 경제를 악화시킬 우려도 크다.
정부와 한전은 발전사 쥐어짜기 차원의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되레 논란만 낳고 있다. 특히 지난달 도입 방침을 밝힌 ‘전력구입가격(SMP) 상한제’는 전력 수급 위기까지 낳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전이 발전회사에 주는 전력 구매 대금에 상한을 두는 것으로, 발전 원가가 급등해도 전력 구매 가격을 올려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여름철 전력 성수기를 앞두고 SMP 상한제를 시행하게 되면 전력 생산을 포기하는 곳이 속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LNG(액화천연가스) 직도입 사업자들은 LNG를 국내로 들여와 전력을 생산하기보다는 다른 나라에 팔아 이익을 더 내려고 할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