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다른 일, 다양한 사무실에서 내가 선택한 좌석에서 일합니다.’

지난 11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에 있는 SK텔레콤의 거점 오피스에서 직원들이 다양한 형태의 좌석에 앉아 일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인공지능 기반 안면인식 기술, 클라우드 PC시스템 등 첨단 기술을 거점 오피스에 적용했다. /남강호 기자

지난 11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SK텔레콤의 거점 사무실 ‘스피어’ 벽에는 이런 문구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젊은 층부터 중·장년까지 직원 40여 명이 탁 트인 통창과 푸른 식물들을 배경으로 높이 조절 책상, 긴 오픈 테이블, 불투명 파티션이 쳐진 대형 1인용 데스크 등 다양한 형태의 책상(총 170석)에서 일하고 있었다. 출입구에서는 직원들이 인공지능(AI) 카메라에 얼굴을 비추자 곧바로 문이 열렸다. 얼굴에서 68개 특징점을 잡아내 0.2초 만에 신원을 식별하는 안면인식 기술이 적용된 것이다. 이곳에선 개인 노트북이 없어도 문제가 없다. 자리에 비치된 태블릿에 얼굴을 인식하면 클라우드에 연동된 가상 데스크톱 환경이 구현돼 각자 평소 쓰던 PC와 같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 SK텔레콤은 지난달부터 이곳과 경기 분당, 일산에서 거점 사무실을 본격 운영하기 시작했다. 회사 관계자는 “을지로 본사가 조직을 위한 공간이라면 거점 오피스는 개인에 초점을 맞춘 업무 공간”이라고 말했다.

거점 오피스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 사무실로 부상하고 있다. 코로나 유행기에는 기업들이 직원 분산 목적으로 도입했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 이후에도 원격 근무나 하이브리드 근무(재택·출근 혼합) 확산과 맞물려 새로운 인프라로 뜨고 있는 것이다. 거점 오피스가 기존 직원들의 업무 효율과 만족도를 높이는 목적뿐 아니라 인재 유치 전략 측면에서도 조명을 받으면서 기업들의 관심도 높다.

◇거리 두기 끝나도 거점 오피스 뜬다

거점 오피스는 유연한 조직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CJ그룹은 지난해 11월 ‘일 문화 혁신’을 최우선으로 한 중장기 비전을 발표한 후 올 초 서울 중구 제일제당센터, 용산구 올리브네트웍스, 경기 일산 라이브시티에 총 160여 석 규모 거점 사무실들을 열었다. 지난 1월부터 최근까지 2500여 명이 이용했다. 특히 제일제당센터 지하 1층 거점 오피스는 임직원 할인 혜택을 활용할 수 있는 CJ더마켓, 올리브영 등이 같이 있어 인기다. CJ그룹 관계자는 “직원들은 출근이나 재택근무와 비교해 자신의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을 거점 사무실 최고의 장점으로 꼽는다”며 “거점 오피스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행복한 조직 문화 구축’을 올해 목표로 발표한 LG에너지솔루션도 거점 오피스를 빠르게 늘려가고 있다. 지난해에도 서울 마곡, 경기 과천 사옥에 거점 사무실을 열었지만 이용률은 저조했다고 한다. 회사 측은 수도권 핵심 지역 곳곳에 사무실을 둔 공유 오피스를 활용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공유 오피스 기업 패스트파이브·스파크플러스·집무실 등 공유 오피스 업체들과 계약을 맺고, 지난 3월부터 직원들이 수도권 30여 곳의 공유 사무실로 출근할 수 있도록 했다. “지하철역 5분 거리라 통근 시간이 절약되고 업무 효율도 높아졌다” “서울역 지점은 지방에서 출장 온 사람들에게 최고의 선택지” 같은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

◇상시 재택 기업도 거점 사무실 필요

서울 강남권과 경기 판교 거점 사무실은 몸값이 치솟고 있는 개발자 유치를 위한 전략 거점 역할도 한다. 현대차는 지난해 6월 서울 종로구, 용산구, 인천, 경기 지역에 총 7곳, 400석 규모 거점 사무실을 열었는데, 두 달 뒤 판교에 100석 규모의 거점 오피스를 추가로 열었다. 판교 거점 오피스에선 주로 개발자를 중심으로 한 연구 인력들이 근무한다. 쿠팡도 개발자들을 위해 판교에 최대 100명이 근무 가능한 ‘쿠팡 스마트 워크 스테이션’을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상시 재택근무를 선언한 기업들도 거점 사무실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직원들 간 소통, 협업의 공간이 필요한 데다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직원들이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전사 재택 근무에 들어간 부동산 중개 스타트업 직방도 현재 수도권 50개 지역에 자체 거점 라운지를 운영 중이다. 현대카드도 이달 초 상시 재택근무제 도입 방침을 밝히며 강남역 인근에 거점 오피스를 운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