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가 임기 말로 미뤘던 전기·가스 요금 인상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번 달 전기 요금과 가스 요금이 각각 인상된 데 이어 새 정부 출범 이후인 5월과 7·10월에도 가스 요금이 잇따라 오른다. 10월에는 전기 요금 추가 인상도 예고돼 있다. 전기·가스 요금 인상은 작년 말 예고된 것이지만 물가 오름세가 악화되는 시점과 맞물려 서민들의 가계 부담이 더 커질 전망이다.

29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일반 국민과 자영업자가 이용하는 주택용·일반용 도시가스 요금을 5월부터 평균 8.4~9.4%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4월 도시가스 요금을 평균 1.8% 인상했는데 가격이 더 오르는 것이다. 이에 따라 5월부터 주택용 가스 요금이 MJ(메가줄)당 평균 1.23원 인상되면서 서울 4인 가구 기준 평균 가스 요금은 월 2450원 늘어날 전망이다.

가스 요금은 7월, 10월에도 추가로 오른다. 현 정부는 지난해 말 한국가스공사의 누적 손실(약 1조8000억원) 보상을 위한 요금 인상안을 발표했었다. 이에 따라 7월에는 MJ당 0.63원, 10월에는 MJ당 0.4원이 각각 오른다. 올 한 해 동안 MJ당 총 2.3원이 오르는 것이다. 월평균 2만8440원이던 서울 지역 4인 가구의 월 가스 요금이 3만3900원까지 오르게 된다.

전기 요금도 이달 들어 kWh(킬로와트시)당 6.9원이 올랐다. 이에 따라 4인 가구의 월평균 전기 요금 부담은 매달 2120원 정도 늘어났다. 한국전력공사는 오는 10월 kWh당 4.9원의 전기 요금 추가 인상을 예고한 상태다.

서울 한 다세대주택 내 전력계량기들. 지난달 29일 한전은“4월부터 전기요금을 kWh당 6.9원 올리지만 4~6월분 연료비 조정단가는 kWh당 0원으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뉴스1

지난해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단가가 급등하며 원료비가 뛰었지만, 현 정부는 물가 안정을 이유로 지난해 내내 가스 요금을 동결했다. 연료비가 오른 만큼 도시가스 요금을 올리지 못하면서 가스공사는 작년 연말 기준 미수금이 1조8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새 정부도 공공요금 인상 흐름을 제어하기 힘들 전망이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는데도 정치적인 이유로 전기와 가스 요금에 이를 반영하지 않으면 한전과 가스공사의 부실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28일 ‘에너지 정책 정상화를 위한 5대 정책 방향’을 발표한 것도 이런 차원이다. 인수위는 특히 에너지 시장 기능 정상화를 위해 전기 요금을 원가에 따라 결정하는 ‘원가주의 요금 원칙’을 확립하겠다고 했다. 인수위 경제2분과 전문위원인 박주헌 동덕여대 교수는 “한전 적자는 잘못된 전기 가격 결정 정책 관행에서 비롯됐다”며 “전기 가격을 독립적으로 원가주의에 입각해 결정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전은 지난해 5조860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올해 1분기에만 지난해 전체와 맞먹는 수준인 5조7005억원의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계획보다 원전 가동이 줄고, LNG·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높아진 상황에서 국제 에너지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전기료를 올해 1월에 올렸어야 하는데 대통령 선거 뒤로 미뤄졌다”고 말했다.

결국 새 정부에선 전기 요금이 추가로 인상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에 대해 에너지 전문가들은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해 물가를 잡으려는 정치적인 시도 자체가 오히려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한다. 이미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가 심각한 상황에서 현 정부가 했듯 공공요금을 계속해서 동결했다간 결국 국민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한전의 적자는 한계에 도달했고, 돈을 빌려서 전기를 조달하는 지금의 구조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며 “공공요금이 인상되지 않으면 결국 전기 수급에 차질이 생겨 대규모 정전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