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은 최근 여행사 여러 곳에서 “다음 달 국제선 비행기표 대량 구매를 취소해야 하니 양해해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지난달 정부가 일부 해외 입국자의 자가 격리 조치를 면제하자 여행사들이 비행기 좌석을 미리 확보한 뒤 여행 상품을 만들어 팔려 했는데, 기대만큼 해외여행 수요가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여행 수요가 늘면 여행사들이 먼저 항공사에 연락해 비행기 좌석 확보 경쟁을 벌일 텐데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해외 입국자에 대한 PCR(유전자 증폭) 검사를 강제한 게 여행객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방역 당국은 지난달 21일부터 해외 입국자에 대해 자가 격리를 면제했다. 하지만 코로나 증상 유무와 상관없이 해외여행객에게 PCR 검사를 요구하면서 여행·항공업계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 주요 국가에서 방역 완화 조치가 확산하는데도 유독 우리나라만 PCR 검사를 요구하면서 엇박자를 내고 있다”며 “지난 2년간 고사 위기에 내몰린 항공·여행업계가 살아날 수 있도록 여행 성수기인 7월 이전에 PCR 검사 조치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양진경

◇4인 가족 PCR 검사비만 100만원

해외여행객은 국내에 입국하기 48시간 전 해외 현지에서 PCR 검사를 받고, 비행기를 탈 때 항공사에 음성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입국한 뒤에도 보건소에서 PCR 검사를 또 받아야 한다. 여행객 불만은 크다. 미국·유럽에서 PCR 검사를 받으려면 지역에 따라 1인당 100~200달러(12만~25만여 원)가 들기 때문이다. 4인 가족이 해외여행을 한다면 입국 직전 PCR 검사에만 100만원 가까운 돈을 써야 한다. 입국 후 국내 보건소에서 받는 PCR 비용은 무료다. 여행객들 사이에선 “지난달부터 국내에선 신속항원검사로도 코로나 확진 여부를 가릴 수 있게 규정을 바꿔놓고 굳이 해외 입국자에게만 PCR 검사를 요구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PCR 비용 부담 탓에 해외여행을 못 가게 하려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나온다. 해외에서 신속항원검사를 받는 비용은 PCR의 4분의 1정도다.

입국 직전 외국에서 PCR 검사 결과 양성이 나오면 상황이 더 복잡해진다. 이 경우 방역 정책상 확진 일로부터 10일이 지나야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여행 일정을 거의 마무리한 시점에 코로나에 확진되면 그때부터 10일간 머물 숙소를 다시 알아봐야 하고 비행기 일정도 조정해야 한다”면서 “이 같은 위험을 감수하고 해외로 나갈 여행객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행사의 해외여행객 모집도 지지부진

반면 영국·독일·프랑스·인도네시아·캐나다·호주 등은 해외 입국자에게 PCR 검사나 자가 격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여행객은 해외로 자유롭게 나갈 수 있지만 입국 땐 여러 제약을 받는 것이다.

이 같은 강력한 방역 조치 때문에 여행사들의 해외여행객 모집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한 대형 여행사 관계자는 “최근 해외여행 문의가 늘고는 있지만 코로나 이전에 비하면 10%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면서 “PCR 검사라든지 입국 후 격리 문제 같은 걸림돌 때문에 해외여행을 주저한다”고 말했다. 한국여행업협회는 지난 25일 질병관리청에 “최근 세계 주요국의 입국 절차 간소화 움직임과 달리 우리나라는 입국 시 PCR 음성확인서 제출이 의무화돼 여행 수요 확대에 제약이 되고 있다”면서 “여행사의 단체 여행(패키지) 이용객에 한해서라도 면제해달라”고 촉구했다.

한 항공사 임원은 “정부는 올 11월까지 국제선 운항 규모를 2019년의 50% 수준까지 늘리겠다고 했지만 방역 조치 완화가 없으면 가족 단위 여행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비행기는 좌석이 텅 빈 채로 운항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