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에너지 계열사 SK E&S는 작년 3월 호주 에너지 기업 산토스와 함께 호주 북서부 해상의 바로사 가스전에서 저탄소 액화천연가스(LNG)를 시추하고 매년 100만t 이상을 국내에 도입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수출입은행에서 총 3억달러(약 3700억원)를 대출받기로 하고 이를 지난 3월 확정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수출입은행은 지난달 31일 여신심사위원회에서 바로사 가스전 사업에 대한 금융 지원 안건 의결을 보류했다. 수출입은행의 보류 결정이 나오자 재계에서는 “은행 측이 환경단체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여신심사위가 열리기 일주일 전인 지난달 23일 비영리단체 ‘기후솔루션’이 여의도 수출입은행 사옥 앞에서 “호주 원주민과 국내 청년단체 활동가들이 수출입은행을 상대로 SK E&S와 맺은 투자 계약 체결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고 밝히는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해당 사업에서 막대한 온실가스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며 원주민들과 협의 절차가 부실했다는 이유였다. 대출에 제동이 걸린 SK E&S 관계자는 “천연가스 시추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포집·저장(CCS) 기술을 활용해 폐가스전에 보관할 계획인데 답답하다”고 말했다.

탄소 중립이 중요한 의제로 떠오르면서 국내 기업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전면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환경단체들의 압력도 더욱 심해지고 있다. 시위나 기자회견에 그치지 않고 SK E&S 사례처럼 기업의 사업·투자 자체를 저지하려는 시도도 늘어나고 있다.

◇ESG 경영 뜨자 환경단체 목소리도 커져

전남 지역 환경단체 ‘광양만녹색연합’은 올해 초 포스코 광양제철소 인근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피해 실태 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2월부터 공해를 인식한 계기, 그간 앓았던 호흡기 질환들, 정부와 포스코에 요구 사항 등을 묻는 설문·심층 면담을 시작해 5월쯤 결과를 내놓을 계획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단체 사무국장 박모씨는 2019년 광양 지역 공기의 철 농도가 전국 8대 광역시의 50~80배에 이른다고 주장했다가 포스코로부터 허위 사실 공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하는 등 갈등을 빚었던 인물이다.

포스코는 2020년 9월 민주당 서동용 의원 중재로 고소를 취하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당시 이 단체는 잘못된 정보를 유포한 것에 대해 사과도 했지만, 정작 대기오염 물질 배출과 관련해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강구하고자 지역 공동 협의체를 구성하고 참여할 것을 제안했지만 거부당했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끊임없이 환경 투자를 하고 대기 배출 물질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지만 일부 단체의 과도한 문제 제기로 기업 이미지만 훼손되고 있다”고 말했다.

◇”文 정부 탄소 중립 드라이브가 환경단체 부추겨”

지난 22일 국내외 기후 단체 44곳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과 주요 경영진에게 친환경 경영을 요구하는 서신을 보냈다. ▲모든 금융 자회사의 포괄적인 탈석탄 금융 정책 수립 ▲삼성의 국내 소비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것 ▲바이오 에너지 원료 사업을 철수하고 팜유 생산, 무역 사업 확대 및 투자를 즉각 중단한다고 선언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재계 관계자는 “탄소 중립은 추진해야 할 목표지만 단기에 급격한 변화를 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든다”며 “기업 자율성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급격하게 추진한 탄소 중립 정책이 환경단체들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지난해 9월에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릴 예정이던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와 기업계의 탄소 중립 간담회가 환경단체 점거로 무산되기도 했다. 현장에 있던 한 재계 관계자는 “소수 시민단체가 막무가내로 상황을 좌지우지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