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새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완전 백지화하고, 탄소 중립 정책도 대폭 수정한다. 이대로는 2050년 ‘넷 제로’를 달성할 수도 없을뿐더러 우리나라 경제가 고물가, 저성장 늪에 빠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12일 “문재인 정부의 탄소 중립 정책이 실제로는 실현 가능성이 크게 떨어지며, 민생 경제 압박 요인도 갈수록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대대적인 정책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전날 문 대통령이 “탄소 중립 정책의 근간은 변함없이 유지돼야 한다”고 말한 지 하루 만에 인수위가 정면 반박한 것이다.
◇전력 구입비 5년간 13조원 증가
원희룡 기획위원장은 이날 “전기요금 원가의 80%를 차지하는 한전의 전력 구입비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13조원 증가했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2050 신재생에너지 비율 70% 등 문 정부의 탄소 중립 시나리오를 그대로 추진하면 2050년 전기료는 물가 상승분을 제외하더라도 지금보다 5배 이상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해마다 4~6% 전기료가 오르면 현재 월 4만7000원을 내는 가구는 2035년엔 10만원을 내게 된다. 멀쩡한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고, 새 원전 건설은 차일피일 미룬 대신 비싼 신재생에너지와 LNG 발전을 늘려 원가 부담을 키운 탓이다.
원 위원장은 “(문 정부의 탄소 중립 시나리오대로면) 2030년까지 GDP(국내총생산) 감소는 연평균 0.7%에 달할 것”이라며 “전기료 인상과 생산비용 증가 등으로 물가 상승 압박도 상당 기간 지속할 전망”이라고 했다.
게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2030 NDC’도 허언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현 정부는 지난해 말 열린 제26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를 앞두고 ‘2018년 대비 40% 감축’으로 탄소 배출 감축량을 기존 계획보다 68%(1억1145만t) 늘렸다. 2019년부터 12년 동안 해마다 4.17%씩 줄여야 한다.
하지만 2019년 경기 둔화,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감소하던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난해 오히려 4.16% 늘었고, 올해도 1.3%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애초부터 “제조업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 산업구조 특성을 간과했다” “불과 8년여 남은 상황에서 달성하기 버겁다”는 산업계 반발에도 밀어붙여 놓고서는 사실상 첫해부터 지키지 못한 것이다.
◇‘2050 탄소 중립 목표’는 유지
다만 인수위는 ‘2030 NDC’와 ‘2050 탄소 중립’ 목표는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했다. 목표는 유지하되 달성 방법을 대폭 수정하겠다는 취지다.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와 설계수명 만료 원전의 계속 운전을 추진하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낮추는 방식이다. 2030년 전체 발전량의 30%로 계획했던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20~25%로 낮아질 전망이다.
또 차세대 원전으로 불리는 소형모듈원전(SMR)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기로 했다. 탄소배출권 시장도 개선하고, 미국 등 주요국과 글로벌 협력도 강화한다. 전문성이 부족한 시민단체 위주로 짜여 편향됐다는 지적을 받아온 탄소중립위원회 위원 구성도 바꾸기로 했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가되 현실적으로 에너지 안보를 지킬 수 있는 선에서 탄소 중립 기조를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