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주물업체 만중의 충북 옥천군 공장이 폐허 상태로 방치돼 있다. 30년 이상의 업력을 가진 만중은 한때 직원 80여 명이 근무하며 매출 150억원 이상을 올렸지만, 지난해 각종 원·부자재가 급등하는 쓰나미를 이기지 못하고 올해 2월 부도가 났다. /신현종 기자

지난달 31일 찾은 충북 옥천 이원면에 있는 중소기업 만중 공장은 바닥이 뜯어진 채 황량했다. 공장 곳곳에 있는 주물용 장비는 은행 압류 딱지가 붙은 채 방치돼 있었다. 작년 말만 해도 직원 60여 명이 뜨거운 쇳물을 부어가며 주물을 만들던 곳이지만 지금 원자재 보관 창고는 텅 비었고, 공작기계를 만들기 위한 주물 모래 틀은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1990년 설립된 만중은 30년 넘는 업력을 가졌다. IMF 외환위기 때 한 차례 부도를 겪었지만 재창업해 2000년대엔 직원 80여 명이 근무하며 대기업에 납품까지 해 매출 140억~150억원을 올렸다.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큰 고비도 그럭저럭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경기 침체에 최근 1년 원자재 가격 폭등 충격은 피하지 못했다. 은행 대출 한도는 닫혔고, 3개월 넘게 직원 월급도 못 줘 50억원 넘는 빚만 남긴 채 결국 부도났다. 전직 임원 장월용(65)씨는 “업황도 안 좋은데 1년 사이 원·부자재 가격이 2배로 뛰니 버틸 재간이 없더라”고 했다.

◇철강가 폭등 뿌리산업 중기 생존위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빚어진 원자재 가격 폭등이 우리 중소기업을 직접 타격하고 있다. 거래처와 장기간 공급 계약을 맺어온 대기업과 달리 만중과 같은 중소기업은 그때그때 원·부자재를 공급받아 이를 가공해 납품해야 하기 때문에 원자재 가격 급등은 생산 비용 상승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거래처를 유지하고 매출을 올려야 하는 중기 입장에선 비용 상승 요인을 제품 가격에 곧바로 반영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재무 상황이 열악한 중소기업은 갑작스러운 외부 환경 변화에 기업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수출입 중소기업 313곳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중기 10곳 중 8곳이 “원자재 가격 상승이 기업 채산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주조·금형·용접 등 뿌리산업 중소기업이 많이 쓰는 원자재인 고철·선철 등 철강류는 작년 이맘때 kg당 400원에서 지금은 800원 이상으로 거래된다. 1년 사이 2배가 오른 셈이다. 인천의 한 주물업체 관계자는 “국내에서 발생하는 고철 물량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 포스코·현대제철 등 대형 제철사까지 고철을 사들이면서 가격이 더욱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고 했다. 포스코는 산업용 볼트·너트를 만드는 데 필수 원료인 CHQ(냉간압조용) 선재 공급 가격을 지난해 세 차례 올렸다. 포스코로부터 선재를 공급받아 볼트·너트를 생산하는 파스너 업체들은 “t당 평균 140만~150만원 하던 선재 가격이 1년 새 190만~200만원까지 올랐다”고 했다. CHQ 선재는 4월에도 t당 10만원이 오를 예정이다.

◇”원자재 인상 납품단가 연동해야”

국제유가도 1년 전 배럴당 60달러 선에서 110달러 선으로 급등했다. 원유 가격 급등으로 각종 석유화학 원료 가격도 덩달아 올라 페인트·섬유 등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은 비용 상승 부담을 호소한다. 한진케미칼 관계자는 “페인트의 가장 중요한 원료인 수지 가격이 급등했다”며 “에폭시 수지의 경우 코로나 이전 kg당 1900~2000원 선에서 지금은 5000~5500원까지 올랐다”고 했다. 페인트에 쓰이는 화학제품 원료는 원유 공정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나프타인데, 나프타 가격 역시 1년 전 t당 590달러(약 70만원)에서 현재 1000달러 선까지 올랐다. 이 때문에 한진케미칼은 지난해 매출은 10% 늘었지만, 비용 상승으로 남는 게 없다 보니 영업이익은 그대로였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원자재 가격이 더욱 오르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양극화는 점점 극심해지고 있다”며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납품 단가에 연동할 수 있게 하거나, 대기업이 협력업체가 필요로 하는 원자재 일부를 직접 구매해 넘겨주는 식의 상생 노력 없이는 중소기업 상당수가 고사하고 말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