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작년 주가 그래프입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난 16일 서울 송파구 잠실 사옥에서 열린 삼성SDS 주주총회에서 황성우 대표는 대형 스크린에 주가 그래프를 올려놓고 주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화면에는 일본 NTT데이터(75% 상승), 미국 액센추어(59%), 독일 DHL(40%) 같은 세계 주요 IT서비스·물류 기업들의 작년 주가 움직임과 함께 같은 기간 12% 하락한 삼성SDS의 주가 추이가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작년 3월 취임한 황 대표는 “제 취임 1년 동안 주가가 계속 떨어졌다”며 “(핵심 서비스인) 클라우드 준비가 늦었다는 것을 자인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클라우드와 수출입 물류 플랫폼, 이 두 가지에 집중해 진짜 실적이 나는 것을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대기업 CEO(최고경영자)의 ‘고해성사’에 한 남성 주주가 손을 들더니, “안 그래도 주가 하락에 대해 질문하려 했는데 사장님 말씀을 들으니 안심이 된다”고 했다.

◇개미 주주 항의에, CEO들 진땀

연례 주총 시즌을 맞아, 주가 하락에 항의하는 개미 주주들 앞에서 CEO들이 진땀을 흘리며 해명하는 장면이 주총장마다 벌어지고 있다. 20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국내 개미 주주 수는 1374만명(12월 결산 상장법인 기준, 개인 소유자)으로 전년 대비 50% 늘었다. 1인당 평균 5.9종목, 3958주를 갖고 있다. ‘국민주’인 삼성전자를 비롯해 주주 수가 많은 주요 종목들의 주가가 최근 잇따라 하락하자 주총마다 개미들의 불만이 터져나온 것이다. 최근 주총을 치른 한 상장사 관계자는 “주총 전 온라인 사전 질문 접수를 받았는데 가장 많은 질문이 주가 하락 관련이라 CEO가 준비를 단단히 했다”고 말했다.

/일러스트=박상훈

18일 포스코홀딩스 주총에서도 주주들은 ‘배당금 부족’과 ‘연내 자사주 소각’ 등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작년 40만원대였던 주가가 현재 20만원대 후반으로 폭락한 데 따른 항의다. 최정우 회장은 “이사회와 논의해 연내 자사주 소각을 포함한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개미 주주들은 주가 하락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과도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조를 비판하기도 했다. 16일 경기도 수원의 삼성전자 주총장 입구에선, 한 주주가 현장 시위를 벌이는 노조 관계자를 향해 ‘나는 노조가 정말 싫어요’란 피켓을 들고 맞시위를 벌였다. 주총 중에도 한 여성 주주가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하며 생떼를 부리는데 발목이 잡히지 않으면 좋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주총장에 마련한 ‘응원메시지 벽’에 주주들은 “내 삼전주식, 미래 노후자금” “노후연금” “10만전자 응원한다”와 같은 글을 남겼다.

지난 14일 주총을 거쳐 네이버 새 사령탑으로 올라선 ‘80년대생 CEO’ 최수연 대표도 최근의 주가 하락 비판에 맞닥뜨렸다. 네이버 주가는 최근 1년 새 15%가량 떨어졌다. 최 대표는 “저도 많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사업 간 시너지 확대와 글로벌 시장 진출”로 돌파구를 찾겠다고 했다.

◇주주 달래려 선물 공세, 배당 확대도

각 기업들은 주총을 앞두고 개미 주주의 마음을 녹이려는 노력을 벌이고 있다. 주총장을 찾은 주주들에게 선물 공세를 하고, 경영진의 연봉을 깎거나 배당을 확대하는 식이다. 삼성전자는 주총장을 찾은 주주 모두에게 2만원짜리 아티제 빵 쿠폰을 주고, 응원 메시지를 남기면 추첨해 3만원짜리 편의점 상품권도 나눠줬다. 주총 하루 전에 한종희 부회장 등 주요 경영진이 총 17억원어치의 자사주를 사들이기도 했다.

오는 29일 주총을 앞둔 카카오의 남궁훈 CEO 내정자는 “주가 15만원이 될 때까지 연봉과 인센티브 지급을 일절 보류하고, 법정 최저임금만 받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18일 종가 기준 카카오 주가는 10만8500원이다. 지난 1년간 주가가 12% 넘게 빠진 SK하이닉스도 올해 분기 배당 도입과 함께 “주당 배당금을 전년 대비 30% 이상 높이고, 향후 3년간 창출되는 잉여현금 흐름의 약 50%를 주주환원 재원으로 쓰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