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한 신임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이 지난달 20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팔짱을 끼고 웃고 있다. 그는“전체 기업의 40%를 차지하는 여성 CEO를 하나로 연결하는 플랫폼을 구축할 것”이라고 했다. /장련성 기자

노벨문학상을 꿈꿨던 한 문학소녀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굶지 않겠다는 생각에 스물일곱 살이던 1988년 경기 안산 반월에서 철재상을 차렸다. 이후 사업을 금속판재 유통·가공회사로 확장했다. 철판을 레이저로 자르는 등 쇳덩이를 가공해 식품 기계, 반도체 장비, 선박 등의 부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것이다. 그동안 수도 없이 거래처가 부도를 맞는 위기에도 여성 기업인 이정한(61) 비와이인더스트리 대표는 30여 년 만에 철재상을 매출 100억원의 중소기업으로 키웠다. 2006년 경기도지사상, 2008년 기획재정부장관상, 2012년 국무총리 표창, 2017년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표창을 받은 이 대표는 지난달 임기 3년의 여성경제인협회 회장에 취임했다. 여성경제인협회는 1999년 ‘여성기업지원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설립된 법정단체다. 소속 기업 수만 5만7000여 개에 달한다.

“여성 기업인들끼리 회의를 하다 보면 공장에서 코 박고 일하다 급하게 오느라 손톱 끝이 새까만 분도 있어요. 여성 기업인들은 망하지 않으려고 죽어라 회사에 올인하고, 퇴근해서는 자식 돌보느라 사치도 못 합니다.”

이 대표는 “여성 기업인들이 회사를 더 잘 경영할 수 있게 여성경제인협회의 종합지원센터와 여성경제연구소 역할을 강화할 생각”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도 과거 몇 차례 거래처 부도를 맞으면서 ‘아, 여기서 내가 망하면 집 담보 대출을 해준 친정 식구들이 쫄딱 망한다’는 절박감에 매일 새벽 출근을 하며 직원들로부터 용접 기술까지 배우고, 공장 일이 끝나면 어린 아들을 트럭에 태워 거래처를 돌며 수금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 여성 기업은 277만개로 전체 기업의 40%를 차지하지만, 규모와 매출이 크지 않은 탓에 많은 사람이 잘 모르고 있다”며 “277만 여성 기업을 하나로 연결해 정보 교류는 물론, 여성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여성 기업 상생 플랫폼 구축도 중장기 프로젝트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기업·공기업과 여성 기업의 협력도 확대할 계획이다. 그는 “대기업·공기업이 보유한 노하우와 장점을 습득하고, 그들이 가진 국내외 판로 인프라를 활용해 여성 기업에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며 “최근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여성임원할당제 등 기업의 다양성 확보가 대세인데 대기업·공기업 입장에서도 여성 기업과 협력은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여성 기업인뿐 아니라 중소기업인들의 기(氣)를 살려주는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공짜를 바라는 세상이 아닌, 일하는 만큼, 노력하는 만큼 인정받는 사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 정말 열심히 일합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놀면서 실업수당 받아도 그만큼 받는다’는 말을 들으면 맥이 풀린다고 해요.” 이 대표는 “중소기업 직원이라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중소기업에서 10년 근무하는 사람에게는 은행 대출 이자를 0.5% 깎아준다든지, 기차 요금을 5% 할인을 해준다든지 등의 정책이 나왔으면 좋겠다”며 “이렇게 되면 우수한 학생들이 공무원 시험 본다고 몇 년씩 재수하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중소기업에 인재들이 오면, 대기업 경쟁력도 더 높아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