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벤처 투자 회사들이 줄줄이 주식시장 입성에 도전하는 ‘상장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투자한 스타트업의 상장이나 M&A(인수·합병)만 바라보던 지금까지의 방식을 벗어나, 스스로 상장해 자본금 규모를 키우고 수익률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지난해 벤처 펀드 신규 결성액이 사상 최초로 9조원을 돌파하며 스타트업 업계에 뭉칫돈이 몰린 데다 벤처 투자 회사들이 키운 스타트업들이 잇따라 상장에 성공하면서 자신감이 붙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일반 투자자 입장에서는 벤처캐피털 같은 벤처 투자 회사에 대한 투자가 불확실성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벤처 투자업계에서는 “벤처 투자사들은 투자한 회사의 성공 여부에 따라 실적이 크게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거래소 앞에 줄 선 AC·VC
올해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 투자 회사들은 연초부터 상장 주관사를 선정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초기 단계 스타트업 투자를 중점적으로 하는 액셀러레이터(AC·육성 기관) 사이에선 ‘1호 경쟁’이 치열하다. 국내 대표적인 AC로 누적 투자사가 220곳이 넘는 블루포인트파트너스는 상장 주관사로 한국투자증권을 선정했다. 올해 상반기 상장이 목표다. LG, 농심, 만도 등 대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로 1000억원대 자산을 운용하는 퓨처플레이는 대신증권을, 누적 투자사가 200곳 이상인 씨엔티(CNT)테크는 한화투자증권을 상장 주관사로 선정했다. 세 회사 중 가장 먼저 증권시장 문을 여는 회사가 ‘국내 1호 상장 AC’가 된다.
이들보다 투자 규모가 큰 벤처캐피털(VC)들도 상장 초읽기에 들어갔다. 크래프톤, 직방, 지그재그 등 ‘대세 기업’ 투자로 화제가 된 스톤브릿지벤처스는 작년 12월 코스닥 상장 예비 심사를 통과했고, 오는 2월 상장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크래프톤, 애니플러스에서 투자금 회수에 성공한 HB인베스트먼트, LG창업투자회사의 후신인 LB인베스트먼트도 각각 상장 주관사를 선정하고 연내 상장을 목표로 잡았다.
◇“스타트업 투자 확대” VS. “쪽박 차면 어떡하나”
2019년 이후 상장에 소극적이었던 투자 회사들이 2년 만에 줄줄이 상장에 나선 것은 ‘제2의 벤처 붐’으로 유니콘(자산 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들이 잇달아 탄생하면서 이 유니콘들에 투자한 벤처 투자사들의 몸값도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상장해 조달한 자금으로 보다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겠다는 것이 투자 회사들의 계획이다. 투자 회사들은 “지금까지는 일반 주주들이 스타트업 투자에 접근하기 어려웠는데, 투자 회사 주식으로 간접적으로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효과도 발생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안정성’이다. 스타트업 특성상 소위 ‘대박’이 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쪽박’을 차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8~10년 단위로 투자금을 회수하는 벤처캐피털 업계 특성상 매 분기 고른 실적을 낼 수 없다는 점도 우려 사항이다. VC업계 관계자는 “이미 스타트업 업계에 지나치게 많은 돈이 들어와 있다는 평가가 많은데, 투자 회사의 상장으로 더 많은 유동성을 확보할 경우 이른바 ‘버블’이 더 커질 수 있다”며 “생태계가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반 주주 자금을 끌고 들어오는 것이 바람직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상장에 성공한 대형 VC의 성적이 기대를 밑도는 경우도 있다. 토스, 배달의민족 투자로 ‘잭팟’을 터뜨린 KTB네트워크는 작년 말 상장했지만 현재 주가는 공모가 5800원에 한참 못 미치는 4400원대에 머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