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 1급 실장(차관보급)이 민간 기업으로 옮긴다. 퇴직 후 공기업 및 각종 협회 수장 자리가 보장된 산업부 1급 공직자의 기업행은 이례적인 일이다. 탈(脫)원전 이후 산업·통상·에너지 정책의 컨트롤 타워라는 위상과 사기가 크게 꺾인 산업부의 최근 분위기를 보여준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들어 산업부 고위 관료 퇴직은 이전 정부에 비해 50%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사무실/연합뉴스

16일 산업부와 재계에 따르면 김정일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지난 10일 퇴직하고, 국내 10대 그룹의 임원으로 이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행시 38회인 김 전 실장은 전자부품과장, 자유무역협정정책관, 에너지혁신정책관 같은 주요 보직을 거쳤다. 산업부 고위직 출신 한 인사는 “대개 1급은 퇴직하면 공기업 대표나 공공기관장의 자리가 보장돼 미래가 불확실한 기업행을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산업부 전직 고위 관료는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으로 선·후배들이 고초를 겪는 걸 보고 회의를 느낀 후배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문재인 정부 들어 국장급 이상 산업부 고위 공무원의 퇴직은 이전 정부에 비해 크게 늘었다.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실과 산업부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5년과 박근혜 정부 4년 3개월간 산업부 고위 공무원 퇴직자는 각각 30명이었지만, 현 정부는 4년 8개월 동안 46명으로 늘었다. 50%나 급증한 것이다. 특히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논란이 불거진 지난해 이후에만 13명에 이른다.

산업부 고위 공무윈들의 이직 러시는 문재인 정부 들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고, 통상 분야도 타 부처에 주도권을 내주면서 침체된 산업부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 나온다. 과거 산업부는 국가 에너지 정책을 주관하며 원전 수출과 건설을 이끌었지만, 현 정부 들어선 ‘월성 1호기 폐로’를 비롯한 ‘원전 죽이기’에 내몰려 왔다. 통상에서도 중국, 캐나다, 호주 등 주요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주도했던 과거와 달리, 미·중 대립에 따른 공급망 재편 시대를 맞아선 기획재정부·외교부에 밀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산업부에서 민간 기업으로 옮기는 사례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부쩍 이직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 행정의 주축인 과장급 공무원의 경우에도 지난해 10월 이후에만 3명이 민간으로 이직을 했다. 통상 분야 H과장이 한 중견기업으로 이직했고, 에너지를 담당하던 P과장은 대기업 계열 반도체 업체로 옮겼다. 또 다른 H과장은 지난 연말 한 에너지 기업에 자리를 잡았다.

일부에서는 산업부 덩치가 이전 정부보다 커지면서 그에 비례해 고위직 퇴직자도 늘어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산업부는 박근혜 정부 때 통상 분야가 외교부에서 돌아오며 한때 부처 규모가 커졌지만, 현 정부 출범과 함께 중소벤처기업부가 분리됐기 때문에 이 같은 해석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위 관료의 퇴직 추세가 두드러지는 현상을 정원 문제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