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이 추진해온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유럽연합(EU) 반대로 제동이 걸리면서, 대우조선해양 회생과 국내 조선업 구조조정이라는 숙제는 3년 만에 원점으로 되돌아오게 됐다. 공을 다시 떠안게 된 정부는 EU 발표 직후 “대우조선해양 정상화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와 산업은행이 조선산업 구조조정이라는 난제를 해결할 다른 방안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 조선업계는 회의적인 분위기다. 인수를 추진하면서 막대한 자금과 노력을 쏟아부은 현대중공업은 EU 법원에 제소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승산이 크지 않은 싸움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제동 걸린 조선 구조조정… 현대중공업, EU 상대로 소송할 듯
EU 경쟁 당국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합병에 반대한 핵심 이유는 독점 우려다. 대형 LNG(액화천연가스)선 시장에서 유럽 선사들에 선택의 폭을 좁히고 단가 상승을 유발할 것이라는 논리다. EU는 “두 회사는 이 같은 부정적인 효과를 상쇄할 만한 구제책을 제출하지 않았다”고 했다.
현대중공업은 EU 결정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13일 보도 자료를 내고, “EU 당국이 우려를 표명한 LNG선 시장은 삼성중공업과 중국 후동조선소, 일본 미쓰비시, 가와사키 등 대형 조선사와 러시아 즈베즈다 같은 경쟁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특정 업체가 독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조선업계는 입찰로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에 높은 점유율이 아니라, 실질적인 경쟁자들이 존재하는지로 독점을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이 EU 경쟁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조선업계 고위 관계자는 “한국 조선 산업은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의 ‘빅3 체제’로 계속 가면 미래가 없다는 것이 조선업계 공통 의견”이라며 “이를 재편하기 위해서는 EU 경쟁 당국이 제기한 독과점 논리를 깨야 한다는 게 현대중공업 최고 경영진 생각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이 EU 경쟁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사례는 17건 중 2건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미궁에 빠진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그룹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 최대 2조5000억원을 투입해 재무 구조를 개선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인수가 무산되면서 이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1~3분기 누적 영업 손실 1조2393억원을 기록했고, 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175.8%에서 지난 3분기 297.3%로 급등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선박 발주가 이어지면서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이 수주 목표치를 40% 초과 달성했지만 누적된 부실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대우조선해양은 2015년 이후 7조1000억원에 달하는 공적 자금을 받아 버텨왔다.
앞서 지난해 말 이동걸 산은 회장은 “인수가 무산될 경우에 대비해 플랜B·C·D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뚜렷한 대안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업계에선 산은이 재매각에 나서더라도 인수 의향자가 나타날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선 포스코·한화·효성 등을 잠재적 인수 후보군으로 언급하지만, 수소·이차전지·우주 등 신사업 확장에 집중하고 있어 관심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조선해양노조를 중심으로 공기업화를 주장하는 요구도 있지만 이는 사실상 세금으로 부실을 메우는 것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조선 3사 수주 실적이 좋기 때문에 합병 무산의 여파가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다시 2010년대 초반과 같은 불황을 겪을 경우엔 조선 산업 전체가 공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조선업계는 과도한 저가 수주 경쟁과 불황으로 수조 원대 적자를 내며 존폐 위기에 몰렸었다.